정부가 미국산 셰일가스를 연간 280만톤 가량 수입하고 미국산 항공기와 자동차 수입도 늘리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시대를 맞아 대미 무역흑자를 줄여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고 통상 압력도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 대응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제190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2017년 대외경제정책방향’을 확정했다. 정부는 우선 대미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줄여 트럼프 정부의 예봉을 피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올해 미국산 셰일가스를 280만톤 안팎 수입하기로 했다. 또 산업용 기기와 수송장비 등 미국이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제품의 수입도 늘리기로 했다. 구체적인 품목으로는 항공기, 항공기 부품, 반도체, 자동차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1~10월 우리나라의 대미 경상수지 흑자는 302억 달러(GDP 대비 7.9%)다. 우리나라는 미 재무부가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으로 제시한 세 가지 기준(대미 경상흑자 200억 달러 이상, GDP대비 경상흑자 비율 3% 초과, GDP 대비 외환시장 개입비중 2% 초과) 중 두 개를 충족하고 있다.
자동차는 이미 미국산 수입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자동차 수입은 총 6만99대로, 전년에 비해 22.4%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나아가 상반기 중 트럼프 정부와 한미 통상장관회의, 한미 산업협력대화 등 양자 협의 채널도 가동하기로 했다. 경제부총리가 참석하는 G20 재무장관회의(3월), 미주개발은행(IDB) 연차총회(4월) 등 다자회의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범부처 대표단을 미국에 보내 한미간 통상ㆍ투자협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정부는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와 관련 보복성 조치를 잇따라 내 놓고 있는 중국과도 접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한중 경제장관회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위원회 등의 채널을 통해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비관세 장벽 문제를 논의한다는 게 정부구상이다.
개별국가들과 ‘FTA 신시장’창출에도 주력한다.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선언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방침을 계기로 세계 통상 정책의 무게 중심이 다자 구조에서 양자 구조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에콰도르, 이스라엘과의 FTA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 지은 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이 속해 있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이나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등과 신규 FTA를 추진할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위안부 문제 등 정치적 이슈로 협상이 쉽지 않은 한일 FTA 대신 한중일 FTA 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NAFTA 탈퇴 가능성이 거론되는 멕시코와 개별 FTA 협상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엔 민간 금융전문가가 국제금융협력대사(1명)로 임명된다. 후보로는 허경욱 전 경력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대표부 대사,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07년 2월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이 대사 자리에 임명된 지 10년 만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대응이 트럼프 정부의 환심을 얼마나 살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대응도 너무 안일한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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