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ㆍ조윤선 구속에 선 긋기
영장 내준 사법부까지 비판한 셈
최순실, 청와대인사까지 개입했는데
“문화 쪽 외 천거 없어” 잡아떼기
특검 조사ㆍ탄핵심판 앞서 ‘물타기’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힌 건 일방통행식 자기 주장만 강변해 온 행태의 반복일 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검찰과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의 수사, 언론 보도 등으로 드러난 사실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뜬 구름 잡듯 부인하기만 해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물타기’를 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이 운영하는 보수 성향 인터넷 방송 ‘정규재TV’와 인터뷰하면서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국정 농단 혐의와 그와 연관돼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주장했다. 정작 박 대통령이 구체적인 혐의들에 대해서 근거도 대지 않고 잡아떼기만 했다.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관련 언급이 대표적인 경우다. 박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에 대해 아느냐”는 질문에 대해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구속됐지만 선을 그은 것이다. 특검은 관계자 진술과 증거 등을 바탕으로 이들이 대통령에게 리스트 관련 내용을 보고한 여러 정황을 확보하고, 리스트에 기재된 1만여명에 달하는 문화예술인과 단체 등에 지원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참모인 이들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검은 임박한 대통령 대면조사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특검 수사가 잘못됐다면 김 전 실장 등에 대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내 줬겠느냐”며 “자기 변명을 위해 사법부까지 싸잡아 비판한 셈”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와 ‘경제공동체’라고 보는 시각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며 “엮어도 너무 억지로 엮은 것”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특검은 박 대통령의 의상을 제작한 의상실 관계자를 조사해 최씨가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박 대통령의 옷값 수억원을 대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설령, ‘경제 공동체’ 개념이 적당하지 않다 하더라도 최씨와 박 대통령이 이익을 공유한 정황은 이미 검찰 수사 등에서 드러났다. 최씨 부탁을 받고 박 대통령은 최씨의 딸 정유라(21)씨의 초교 동창의 아버지 회사(KD코퍼레이션)에 납품 거래를 하도록 현대자동차 측에 강요했다. 이 회사는 대통령 순방 경제사절단에도 포함됐다.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이 뇌물 혐의를 벗기 위해 경제공동체를 적극 부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대통령의 경제공동체 언급에 대해 “경제공동체는 법적 개념이 아니고 특검에서도 그 개념을 사용하거나 중요시한 적 없다”고 말했다. 다만, 박 대통령 입장에선 두 사람이 사실상 같은 지갑을 사용한다는 ‘경제 공동체’라고 국민들에게 인식될 경우 부정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판단해 이같이 잘라 말했다는 해석도 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특검보다는 국민들을 향해 최씨와의 관계를 딱 잘라 부정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호성(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녹음파일과 최씨가 사용하던 태블릿PC 등에서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과 문서들이 최씨에게 전달됐지만 이마저도 부인했다. 광고감독 차은택(48ㆍ구속기소)씨가 최씨에게 추천해 자신의 외삼촌 김상률(57) 전 교육문화수석이 임명된 사실도 이미 드러났지만 박 대통령은 “문화 쪽 외에는 (최씨의 천거는) 없다”고 했다.
나아가 최씨의 비리와 박 대통령의 비호 사실이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무수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정작 박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게 아니냐는 점을 지울 수 없다”며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앞으로 특검이 수사해야 할 부분에 해당한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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