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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설을 위해…" 남자들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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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설을 위해…" 남자들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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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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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대한민국 남자 대표라며 수다를 떤 다섯 명의 기자들. 왼쪽부터 양승준 라제기 김영신 강희경 기자. "설 명절? 남자들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한 줄 아세요?"라며 어쩌면 행복하고 배부른 소리를 늘어놓았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자칭 대한민국 남자 대표라며 수다를 떤 다섯 명의 기자들. 왼쪽부터 양승준 라제기 김영신 강희경 기자. "설 명절? 남자들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한 줄 아세요?"라며 어쩌면 행복하고 배부른 소리를 늘어놓았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남자, 벼슬이다. 남자니까 편한 경우 살다 보면 많다. 결혼 뒤 남자의 지위는 더 올라간다. 본가 가면 아드님으로 대접 받고, 처가를 가면 백년손님으로 환대 받는다. 명절 때만 되면 여자들은 괴롭다. 아내와 며느리와 올케라는 위치는 과도한 노동을 부르곤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무리 사라지고 있는 시대라지만 명절, 불평등하고 불평등하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남자라고 편하지 않다. 사랑을 키워 결실을 맺고 알콩달콩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이 일상의 중대고비다. 여자들보다 몸 편히 명절 연휴를 누리는 듯 보여도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여자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 할지 모르지만 남자들도 나름 애로가 많다. 가족들이 따스한 정을 나눠야 할 명절 연휴에 가정 폭력이 평소보다 오히려 45% 늘어난다는 경찰 발표가 남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일보 편집국 남자 기자 다섯이 모여 애초 정이 스민 단어였다가 민감한 용어로 변질되고 있는 명절과 본가, 처가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조태성 기자(조)=“처가가 제주라서 남들은 다 좋겠다고 하는데, 비행기 값이 너무 많이 든다. 우리는 방을 따로 잡고 지낸다. 애들이 시끄럽고 어른들이 불편해 하시니까. 나는 불편할 게 없다. 남들은 불편하다지만 나는 맛있는 거 먹어서 좋다. 장모님이 돌아가셔서 씨암탉 잡아주시는, 그런 로망은 없어 아쉽다. 명절 때 부산 본가와 제주 처가를 한군데만 번갈아서 간다. 아내도 신문사를 다니니 부산과 제주를 다녀올 정도의 시간이 나지 않는다.”

양승준 기자(양)=“설 음식 장만할 때는 도움을 주나.”

조=“나는 옆에서 (전 부칠 때) 기름 좀 뿌려드린다.”

라제기 기자(라)=“부산과 제주를 번갈아 가면 아무래도 본가에서 좋아하지 않을 듯하다.”

조=“집에서 싫어하는 경향이 아주 없진 않다. 눈치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내가 그냥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했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하지 않나. 한번이라도 번갈아 가는 것을 어긴 적이 없다.”

김영신 기자(김)=”나는 처가가 서울 목동이라서 처가 가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은 없다. 결혼한 뒤 본가 가는 것보다 처가 가는 게 훨씬 좋다. 명절 본가에 가면 집사람은 계속 부엌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인데 처가가면 집사람도 편하고 나도 편하니 두 발 뻗고 앉기는 처가에 가서 가능하다. 본가에선 집사람 행동에 눈치를 보게 되니까, 소파에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거 같지 않다. 처가 가면 장인 어른과 술을 굉장히 편하게 마신다. 장인도 집안에서 술을 가장 잘 마시는 사위가 오면 좋아하신다.”

라=“본가와 처가가 전북이라서 명절 때마다 두 곳을 다 들른다. 본가가 처가보다 편하긴 하다. 처가에 가면 어른들은 편히 쉬라고 하시는데 마음 놓고 누워있지는 못하겠더라. 결혼한 뒤로는 본가도 예전처럼 편하지 않다. 와이프가 전통에 따라 피곤해도 음식 장만을 하는데,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 많으신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모습도 편치 않다. 예전처럼 명절이나 돼야 이러저러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니 꼭 명절 음식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설거지라도 도와주려고 하면 와이프가 싫어한다. 어머니 눈치가 보여서다. 처가에서 연로하신 장모님이 음식 장만하시고 상을 차리실 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강희경 기자(강)=“처가가 원래 울산이었는데 지금 장인, 장모님은 전북 군산에 사신다. 예전보다 시간이 덜 걸려 처가 가는 부담은 별로 없다. 본가에서 세배를 하고 군산으로 가는 식으로 명절을 양가에서 보낸다. 나는 본가가 편하긴 한데 와이프가 불편해 한다.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다. 장인 어른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 가부장적이다. 내가 가면 부엌에 못 들어가게 하고 아무 것도 못하게 하셨다. 요즘은 내가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하고 그러면 막지는 않으신다. 사위를 본 뒤 좀 바뀌신 듯하다. 예전에 안 하시던 거실 청소를 하신다.”

라=“그래서 처가 가면 편하지 않나. 와이프가 결혼 전 본가가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부터 소화가 안 된다고 했다.”

김=“다 그렇지 않나. 내 집사람도 일주일 전부터 아프다고 한다(웃음).”

라=“새로운 식구가 됐는데 그렇게 부담스럽나라는 생각에 좀 서운했다. 입장 바꿔보니 남자로 태어나서 난 편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우리 매형이 본가에 와서 있다 보면, 아버지가 대하는 게 나랑 많이 다르시다. 마찬가지로 내가 처가에 가면 장인 어른은 처남한테 굉장히 엄하시고 잔소리도 많이 하시는데, 사위가 가면 모든 이야기들을 들어주신다. 처남이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면 ‘네가 뭘 안다고 그래’라며 약간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시는데 사위가 말하면 ‘아~ 그런 신선한 시각이 있구먼’식으로 말씀하신다.”

라=“사위라서 우대를 받는 거 아닐까? 나 같은 경우도 정치적인 이야기에 대해 장인 어른이 반박을 잘 안하신다. 처남과 장인 어른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서 상하관계가 명확한데 사위와 장인은 좀 수평적인 관계인 듯하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전형적인 수직적 관계로 보인다.”

김=“엄마와 딸은 결혼하고 애 낳고 더 수평적인 관계가 되는 듯하다. 그러니 아내는 처가가 더 편할 수밖에 없다. 사위와 장인의 대화는 마치 선후배 사이에서 이뤄지는 대화와 같다.”

조=“사실 명절 이야기가 나오면 남자는 모두 엎드려 뻗쳐야 한다. 나는 음식 만들기 싹 다 없애버리고, 명절에 사진첩을 두고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새로운 풍습이 생겼으면 좋겠다. 집안 어른들에게 몇 대조 할아버지 훌륭하단 말을 듣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차례나 제사 때 모여 그런 이야기를 나눠야 의미가 있다. 상을 크게 차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시댁이 됐든 처가가 됐든 음식 만들기 줄여야 서로 불편하지 않다.”

양=“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애인과 명절 등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눈다. 양쪽 다 부모님 중 한 분만 살아계셔서 더 조심스럽다. 명절 때 본가와 처가를 갔을 때 머무는 시간은 각각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벌써부터 하고 있다.”

김=“경험상 머무는 시간은 똑같이 배분하는 게 좋다.”

라=“완벽한 배분이라는 게 어렵지 않나. 본가를 먼저 갔다가 처가를 가면 아무래도 아내 입장에선 서운할 수 있다. 그런 구분부터가 남편 편의주의에서 비롯됐다.”

김=“결혼하고 5년 동안은 머무는 시간을 두고 많이 싸웠다. 어머니는 누나네 식구 올 때까지 좀만 기다리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처가에 있는 시간이 당연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라=“우리 애들이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 지금과는 다르게 명절을 보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하기도 하고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기도 하다.”

김=“평소 연락 안하다가 명절 되면 일가 친척들이 만나는데 뭔가 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이 더 들면 명절에는 각자 쿨하게 놀자, 여행을 가자 그럴 듯하다. 요즘 그런 집들 많다고 한다. 그런 정도로 문화가 바뀌어야 하지 않나. ‘우리 때는 한꺼번에 바꾸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 애들은 눈치보고 부담스러운 명절 보내게 하지 말자’고 집사람과 항상 이야기 한다. 물론 그러려면 애들이 생각이 좀 깨어 있는 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

조=“우리 집사람은 좀 걱정된다. 시엄마 노릇할 거 같다(웃음).”.

라=“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모두 두 얼굴을 지녔다.”

조=”모든 아들들은 자기 어머니는 쿨한 시어머니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정화수 한 그릇 떠서 절 한 번 하는 식으로 차례를 지냈으면 좋겠다. 옛날엔 자손이 많았지만, 지금은 애들도 적지 않은가.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건 나쁘다고 생각 안 한다. 콘도 하나 잡아서 1박2일 놀러 갔다 오는 것도 좋다. 즐겁게 놀면서 조상 중에 기억할 만한 분 있으면 잠깐 추억하고, 그러면 애들한텐 좋지 않을까. 우리 모두 누군가의 몸을 받아서 태어난 존재들인데 제사를 없앨 수는 없다.”

라=“차례나 제사의 규모가 크든 작든 누군가의 주도로 자리가 마련되고, 음식은 누군가가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가족 내 서열을 통해 누군가는 심한 가사 노동을 할 수도 있다.”

김=“차라지 포트럭 파티처럼 명절을 보내는 건 어떨까. 너는 이번에 만두를 빚어와라. 떡은 사자, 이런 식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나눠 먹으면 어떨까.”

조=“우리 할머니는 살아계실 때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좋아하셨다. 며느리들이 뭐 차려드리려고 하면 ‘됐다 삼겹살에 소주 하나’이셨다. 그럼 제사상에 그것만 올리면 되지 않을까.”

라=“우리는 형식을 따지면서 정말 의미 있는 형식은 잘 안 따지는 거 같다. 돌아가신 분 되새기는 방법은 그분의 유품, 생활습관, 음식 취향을 되돌아보는 거 아닐까.”

김=“동감이다. 술 안 드시는 분 돌아가셨는데 술 올리는 건 아닌 듯하다.”

라=“가족 관계는 모순이 있다. 어머니는 누나가 시댁 가서 명절에 고생하는 걸 많이 싫어하신다. ‘우리 애는 직장을 다니는데 직장 안 다니는 것처럼 대우하냐’ 이런 불만이다. 그런데 와이프를 대하는 시선은 좀 다르다. 딸과 며느리에 적용되는 시선이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 좀 난처하다.”

"독자 여러분이 대한민국 최고입니다. 가족 모두가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독자 여러분이 대한민국 최고입니다. 가족 모두가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김=“명절 보내기가 획기적으로 변하려면 남자의 어머니, 시어머니들이 변해야 한다.”

라=“어머니를 변하게 할 수 있는 이는 결국 아들 아닌가. 아들들이 변해야 한다.”

김=“맞다. 아직까지는 아들과 며느리인 우리가 바꿔나가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분명히 든다.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런데 왜 용기를 내서 바꾸자는 말을 못할까.”

라=“연로하신 부모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왠지 불효자가 되는 기분이 들 테니까.”

강=“부모님 돌아가시면 명절에 그냥 여행가면 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와이프는 ‘부모님이 밥 한 끼 못 얻어먹으면 좀 그렇다’고 하더라. 차례상까지는 아니어도 가족끼리 말 그대로 밥 한 끼 먹는 풍습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라= “그럼 명절에 외식을 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강=“괜찮다. 꼭 음식을 만들 필요는 없다. 지금도 저희 어머니에게 안 먹는 제사 음식 왜 하냐고 여쭌다. 그냥 맛있는 음식을 차려서 먹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아예 안 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 안 한다. 음식 하는 사람, 먹는 사람, 명절 때 일하는 사람, 손님 맞는 사람 분리되어 있는 게 문제다.”

라=“서로 명절을 즐기자고 만났는데 아내가 힘들어 하면 남편도 마음이 편치 않다. 명절이 스트레스와 짜증을 유발하자는 게 아닐 텐데 결국엔 마음도 몸도 힘들다. 모두가 행복한 설 연휴를 보내기 위해선 결국 남자들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참관인으로 함께한 10년차 장손 며느리 최문선 기자가 수다 말미에 던진 한마디는 긴 대화에 방점을 찍기 충분했다. “여자들이 봤을 때는 행복하고 배부른 소리들에 지나지 않은 듯합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세요!

정리=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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