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공무원을 싫어한다. 대부분 나라를 망친 큰 도둑질에는 공무원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민이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공무원이 국민을 우습게 보고, 고압적이기까지 하니, 애당초 시민이 공무원을 좋아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성인 자녀를 둔 부모, 사회로 첫발을 내디뎌야 하는 청년, 경쟁에 심신이 피폐해진 월급쟁이와 자영업자에게 공무원은 꿈의 직장이다. 집단으로서 시민은 공무원을 싫어하지만, 개인으로서 시민은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론이 이러하니 공무원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없다. 하지만 더는 머뭇거릴 수 없다. 박정희 권위주의 체제 이래 지속되었던 수출주도형 성장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35년 동안 세계 무역 성장률이 GDP 성장률보다 낮았던 시기가 몇 차례 있었지만, 당시 무역 침체는 단기적 현상이었다. 길어야 두 해를 지나면 세계무역은 다시 큰 폭으로 성장했다. 수출주도형 한국경제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한국이 1997년 경제 위기 당시 비교적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수출주도형 성장은 시민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늘어나는 수출은 국내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자료를 보면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12년부터 세계무역 성장률은 GDP 성장률과 같거나 겨우 0.1% 포인트 높았다. 더욱이 2016년 예상치에 따르면 세계 무역 성장률은 GDP 성장률의 80%에 불과하다. 문제는 2017년 이후에도 세계 무역 성장률이 GDP 성장률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내수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성장전략을 전환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보호주의를 공언하고 있다.
수출로 성장과 일자리를 만들었던 박정희식 경제의 지속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수출이 어렵다면 대안은 내수의 성장을 통해 찾을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내포적 성장을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수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재벌기업이 국내에서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현대자동차와 같은 재벌기업들은 이미 국내보다는 해외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 북서유럽에서 했던 것처럼 직접 사회서비스 공무원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의 경우를 보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창출된 신규고용의 90%가 공공부문(공무원) 일자리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에게는 아직 공공부문 고용을 늘릴 여유가 있다. 한국의 공공부문 고용 비중은 2013년 기준 7.6%(190만)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10명 중 3.5명이 공공부문에 취업해 있고, OECD 평균도 21.3%에 이르고 있다. 비 OECD 국가인 브라질의 공공부문의 고용비율도 한국보다 높은 12.1%이다.
우리가 공무원을 OECD 평균의 60%(12.8%) 정도로만 늘려도 신규 (준)공무원의 수가 무려 130만에 달한다. 청년실업은 물론이고, 질 나쁜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규모이다. 게다가 공공부문 고용을 늘리면, 빈곤과 불평등이 줄어든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반가운 소식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와 박원순 시장이 백만 이상의 공공부문 고용확대를 공약했다는 것이다. 다른 후보들도 동참하기를 바란다. 다만 두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는 공공부문 일자리는 공무원과 같은 신분과 처우가 보장되는 일자리이어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증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는 박근혜식 사기극은 잊어버리자.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