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소재를 위트 있게 잘 잡아내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할머니가 소라에서 바다 소리를 듣는 장면을 아이에게 읽어주다 저는 영화 ‘라붐’에서 소피 마르소 귀에 헤드폰을 씌워주는 장면이 떠올라서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이런 장면들을 어떻게 생각해내시는 지 궁금합니다.”
작가 안녕달은 움직이는 과녁이다. 쉽게 명중을 허락치 않는다. 배실배실 웃더니 “혼자 딴 생각하다가… 제가 게을러서 누워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누워서 책 읽고 낙서하다 그러다 잠깐 든 생각이 확장되어 나가는 방식이에요” 이러고 만다.
25일 오후 서울 내수동 경희궁의아침 4단지 워켄드 아크홀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릴레이콘서트. 이런 식의 쫓고 쫓기는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고, 곧 잔잔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안녕달 작가는 ‘할머니의 여름휴가’로 어린이ㆍ청소년부문상을 받았다. 이 책은 심사과정에서 어린이책에 흔히 등장하는 ‘마음씨 좋지만 무기력한 할머니’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할머니’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색다른 페미니즘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실제 작가는 “할머니들은 빈 터만 있으면 텃밭을 일구고 집을 꾸미는데 열심인데, 정작 자식들은 할머니란 늙으면 귀찮아서 어딜 안 가려 하는 존재라 생각한다”면서 “할머니는 너희들 생각 이상으로 아주 멋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걸 표현하기 위해 책에는 할머니가 제 손으로 무언가를 부지런히 가꾸고 기른 흔적들인 각종 화분과 작물들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새로운 페미니즘이니 하는 그런 평가에 대해 정작 작가 자신은 어색했던 모양이다. 또 배시시 웃고는 “친한 친구가 엄마보다 할머니와 더 친했는데, 저는 그러질 못해서 할머니의 애정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면서 “저는 그냥 그릴 뿐인데, 편집자님이나 이런 분들이 너무 큰 의미를 담아주신다”고 했다.
할머니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어려 있는 아이들 책이었던 만큼, 확실히 이 날 북콘서트에는 여성 청중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또 그런 만큼 세밀한 질문들이 많았다. 책을 만들 때 어떤 재질의 종이를 썼는지, 부드러운 느낌을 얻기 위해 따로 쓰는 방법이 있는지, 심지어 작업할 때 쓰는 색연필의 구체적인 브랜드까지도 물었다.
절정은 책 뒤 편 바코드에 대한 질문이었다. 강렬한 햇볕이 비치는 느낌을 바코드에서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고민하다 바코드에다 펜 선으로 음영을 넣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만드는 이나, 책에서 그런 걸 찾아내는 이나 똑같다. 필명 안녕달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작가는 “본명이 너무 흔해서 다른 이름을 찾다 인디밴드 이름 짓듯 좋아하는 단어로 지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마지막 인사말도 ‘움직이는 과녁’다웠다. “안녕히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들릴락 말락한 작은 목소리였다.
조태성 기자 amorafti@hank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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