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 실상을 밝히며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체제에 저항하는 ‘북한의 봄’(Korean Spring)을 촉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태 전 공사는 25일(현지시간) 공개된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인민들의 봉기를 가능하게 만들고 싶다”며 “우리는 북한 인민들이 북한의 봄을 스스로 끌어낼 수 있도록 그들을 교육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부 정보가 차단된 북한의 현실을 언급하며 “북 주민 교육을 위해 외국 영화를 담은 이동식저장장치(USB)에서부터 외부 뉴스를 들을 수 있는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정보 봉쇄를 깨뜨릴 어떤 수단이든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해 7월 영국에서 탈출해 귀순했다.
태 전 공사는 첫 해외근무지였던 덴마크에서 북한의 통치 체제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사회는 비교라는 개념이 없다, 바깥 세계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체제에 대한 불신이 점점 더 자라났다”고 말했다. 이 시기는 300만명에 가까운 북한 주민들이 대기근으로 숨진 시기와 일치한다고 WP는 전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지도부 또한 유사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고위 관리들 사이에는 연대감이나 충성심이 없다”며 “고위 관리들은 이 체제가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를 포함한 북한의 엘리트들은 김정은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젊은 만큼 정책 방향을 바꾸고 북한을 현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며 “그러나 김정은은 북한이 핵 개발의 길을 완성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지적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한 때는 장성택이 처형된 2013년 말이었다는 그는 당시 대학 입시를 앞두고 컴퓨터 공학에 관심을 갖던 막내아들로부터 ‘왜 북한에선 인터넷이 허용되지 않는가? 북한 인민들에겐 외국 영화가 허용되지 않는가? 왜 책도 마음대로 못 읽는가?’ 등의 질문을 받고 “아버지로서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가족 간에 토론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탈북ㆍ귀순을 한 배경에 대해 태 전 공사는 이어 “김정은이 아직 젊어 내 손자들까지 이 체제에서 살아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며 “노예의 사슬을 끊지 않았다면 후손들이 ‘왜 당신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했느냐’고 불만을 터뜨릴 것이기에 탈북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한편 오는 2월 중 워싱턴DC를 비롯한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정부 관계자와 싱크탱크 전문가들을 만나 북한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알리고,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에 나서줄 것을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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