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대기업 직원 A씨는 얼마 전 인사발령을 받고 난감해 했다. 근무지가 수도권에서 영남지방으로 멀어졌고, 직무도 사무관리직에서 설비를 점검하는 현장직으로 바뀌었다. 그는 “입사 후 줄곧 사무직으로 일했는데 현장직을 맡아 의아하다”며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초반 남성 A씨는 상사와 사전 논의 후 육아휴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는 바로 육아휴직에 들어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신청서는 2주가 넘도록 결제가 이뤄지지 않다가 서류 보완을 이유로 반려됐다. 그리곤 상사가 A씨를 조용히 불러 다른 부서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 지었다.
저출산, 경력단절여성, 황혼육아 등의 문제를 남성의 육아휴직을 통해 해결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대한민국아빠육아휴직운동본부’의 상담 사례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많이 늘어났지만, 이처럼 일선 사업장에서는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렵거나 육아휴직 후 직간접적인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명훈(39) 대한민국아빠육아휴직운동본부 대표는 “관련법령상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사업자가 거부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신청서 반려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질질 끄는 경우가 가장 많다”며 “직원이 신청한 육아휴직을 거부한 사업자에 대한 처벌을 현행 벌금형(최대 500만원)에서 징역형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성 육아휴직의 어려움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여성정책연구원이 남성 육아휴직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014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신청했을 때 회사의 반응은 반대가 42.4%(매우 반대 12.7%, 약간 반대 29.5%),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우가 41.8%였으며 찬성은 16.0%(찬성 14.0%, 적극 찬성 2.0%)에 불과했다.
육아휴직 신청에 대한 회사 분위기도 ‘남녀 모두 신청은 가능하지만 부담을 느끼거나 눈치가 보인다’가 37.7%로 가장 높았고, ‘여성은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으나 남성은 그렇지 않다’(32.0%), ‘남녀 모두 어렵다’(11.4%) 등 여성에게 비호의적이면서 남성에게는 더 비호의적인 편이었다. 남녀 모두 언제든지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는 분위기는 18.6%에 그쳤다.
특히 육아휴직 결정시 걱정되는 사항으로 ‘승진 등 직장 내 경쟁력 하락’(19.4%), ‘동료들의 업무 부담’(13.4%), ‘남성육아휴직에 대한 부정적 시선’(11.5%) 보다 ‘소득 감소’(41.9%)를 가장 많이 꼽았다. 현행 통상임금의 40%(최대 100만원)인 육아휴직 급여 확대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남자 육아휴직자를 아직도 생경하게 생각하고, 애사심이나 충성도가 없어 곧 떠날 사람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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