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도급ㆍ공정상 동업 가능하면
개인사업자로 퇴직금 못받아
사실상 통제 받으면 근로자 인정
구두 회사가 내린 작업지시서에 따라 일한 제화공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어서 퇴직금을 안 줘도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똑같이 도급계약을 맺고 작업지시를 받으며 거의 동일한 작업을 했던 서울 성수동 구두장인들을 근로자로 인정한 이전 판례와 정반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 권혁중)는 구두제조판매업체 소다의 의뢰를 받아 구두를 만들어온 고모씨 등 16명이 “우리도 근로자로 인정해서 퇴직금을 받게 해달라”며 소다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고씨 등은 2010년 9월 발 모양 틀에 가죽을 씌우고 건조하는 작업을 해서 소다에 넘기기로 하는 일종의 도급계약을 맺었다. 수요에 따라 회사가 물량을 당일 정해주면 소화해 내는 식이다. 제화공들은 소다가 준 작업지시서에 따라 일하면서 회사의 관리를 받았다. 고씨 등은 “임금을 받기 위해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했으니 근로자가 맞다”고 주장했다.
쟁점은 사측에 종속된 근로자인지, 아니면 일감만 따로 받은 개인사업자인지였다. 재판부는 “종속 관계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회사 손을 들어줬다. 작업지시서에 따라 작업했더라도 회사가 의뢰를 넘어서 제화공 업무에 구체적으로 개입해 통제했다고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유명 구두업체 탠디 쪽 제화공들은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작업지시서에 따라 유사하게 일했는데 지난해 2월 근로자로 인정 받았다. 사측이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이용해 사실상 종속된 제화공들에게 사업자등록을 하게 한, 불법 도급계약임을 인정한 판단이었다.
이처럼 엇갈린 판단의 핵심 기준은 제화공 업무의 재량 범위에 있다는 게 법원 설명이다. 법원 관계자는 “탠디 사건은 제화공들이 탠디 관련 구두 제작 말고 다른 업무를 못하는 전속계약 형태였지만, 소다 건의 제화공들은 재하도급이나 다른 공정상 동업도 가능해서 근로자보다는 개인사업자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소다의 제화공들에게는 정규직과 달리 식비나 작업복이 제공되지 않은 점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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