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메아리] 대통령, 한달 남은 선택의 시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대통령, 한달 남은 선택의 시간

입력
2017.01.25 17:49
0 0

헌재의 탄핵 기각 기대하기 어려워

억울함 있더라도 가시밭길 걸어가야

아직도 하야는 구국 결단일 수 있다

사흘 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소에 참배했다며 청와대가 사진을 공개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이후 처음 외출한 대통령은 10여분 간 참배하면서 긴 생각에 잠긴 듯하다. 대통령을 끔찍이 여겼다는 부모에게 심정을 토로하며 갈 길을 물었을 것이다. 그 대화 내용을 알 길이 없지만 탄핵 가부로 양분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가야 할 제3의 길을 물었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아쉽게도 아직까지 대통령의 시선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청와대 주변에서 들리는 말로는 대통령은 탄핵 기각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한 전직 대법원장에게서 법리적으로 탄핵이 인용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기대는 더 높아졌다고 한다. 설 연휴 직후 언론에 직접 해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하니, 대통령은 개인적 억울함을 푸는 데 얽매여 있는 듯하다. 청와대 밖 기류는 반대로 흐르고 있다. 어딜 가도 마찬가지로 같은 말들이다. 대통령은 이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고, 하야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드러난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탄핵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다는 얘기도 같다. 사회적 담론 역시 ‘탄핵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를 넘어 한국의 재부팅에 맞춰지고 있다. 하물며 새누리당마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대선주자로 영입하려는 실정인 만큼 정치권은 이미 탄핵 레드라인을 넘어선 상태다.

대통령이 듣고 싶은 얘기만 하고, 덕담 수준의 말을 포장해 전하는 주변인사들의 말을 믿기에는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 온 외교안보부터 불안하지 않은가. 황교안 권한대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출범하기 전 106회 접촉했다고 하지만 만남 횟수에 의미를 두는 대행체제에 외교를 맡길 수 없는 일이다. 국제 망신거리가 된 최순실 사태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도 갈수록 차갑다. 뉴욕타임스는 23일자에서 최순실씨가 정치의 음악상자를 돌리며 원숭이를 이용해 재벌들로부터 거액 지폐를 받는 만평을 내보냈다. 목줄을 한 원숭이가 대통령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주목할 것은 대통령이 믿는 헌법재판소 주변에서도 이런 상황을 만든 일 자체가 탄핵감 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억울해 한다지만 이제는 그 억울함을 풀려면 청와대에서 나와 가시밭 길을 가는 게 맞다. 말을 해도 믿어주어야 하는데 지금 분위기라면 대통령의 어떤 말도 허공을 맴돌 뿐이다. 대통령을 겨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가는 특검이 실정을 죄다 들춰내는 판에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 손 써볼 겨를 역시 없어 보인다.

정치적 셈법을 하지 않더라도 하야는 대통령에게 유리하다. 대선정국의 여론은 여전히 정권 심판론이 강하고, 보수의 구세주격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컨벤션 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야권 유력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는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은 집권 시나리오가 돼 버렸다. 대통령의 하야는 이런 판을 흔들면서, 크게는 정치 경제 외교 일정의 불확실성을 없애는 구국적 결단으로 평가될 수 있다. 대통령이 보통사람으로 특검에 나가 조사받으면 구속 되어 영어의 몸이 될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겠으나 모든 의혹과 비위가 내 잘못, 내 탓이고 내 말을 따른 죄밖에 없는 이들을 대신해 벌을 달게 받겠다고 한다면 여론은 달라지게 된다. 야권 후보 누구도 이런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넣어둔 채 대선을 치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동정여론 속에 정치적 재개를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경우 정치적으로 오늘 죽는 게 내일 사는 길이고, 역사는 늘 패러독스의 반복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대자들로부터 얻어맞고 지지자들까지 등을 돌린 상태에서 세상을 버렸지만, 지금 친노 세력은 야권 최대 세력이 되어 정권교체에 가까이 가 있다. 탄핵 심판 결정이 2월 말, 3월 상순이라면 대통령에게 주어진 선택의 시간은 한 달여 뿐이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tg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