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에 잘못 간 수백만표 빼면
대선 일반투표도 내 승리” 주장
의회 지도부와 연회서 또 꺼내
TPP 탈퇴로 커진 갈등 더 악화
라이언 의장 “증거 없다” 발끈
당내서도 비난 목소리 잇따라
취임 직후 강경 일변도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 간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에 이어 대선 ‘불법 투표’ 논란을 재점화하자 공화당 의원들은 거센 반발로 맞서면서 당정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공화당 현직 의원 중 1인자로 꼽히는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은 2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투표의 증거는 없다”고 단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유권자 300만~500만명이 불법적으로 경쟁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투표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정면 반박한 것이다. 대선 경선 경쟁자였던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도 같은 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지 말라. 불법투표 증거를 공유할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비난하는 등 민주선거 존중을 요구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날 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 투표 주장은 당선인 신분이던 선거 직후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말 트위터를 통해 “불법적으로 투표한 수백만명을 빼면 선거인단 투표뿐 아니라 일반투표에서도 승리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처음 들고 나왔다. 선거 불복을 연상시키는 발언에 비난이 쏟아졌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여러 주에서 중복 투표한 유권자나 죽었는데도 투표한 유권자가 있다”며 정식으로 조사를 명령하겠다고 나서는 등 ‘불법 투표’ 주장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TPP 탈퇴 행정명령을 승인하면서도 공화당과 긴장 분위기를 조성했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 옹호 기조를 견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신속한 TPP 협상을 위해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부여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러한 TPP를 트럼프 대통령이 뒤집자 공화당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 군사위원장은 “TPP 탈퇴 결정은 미국의 수출 촉진, 시장 개척, 발명과 혁신의 기회를 앗아갈 것”이라며 “중국이 경제 규칙을 새로 쓰는 시대를 앞당기고 미국은 아ㆍ태 지역을 이탈하는 신호를 보낸 셈”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트럼프 정부에서의 당정 갈등이 일찍이 예견된 것도 사실이다. 라이언 하원의장만 해도 지난해 10월 대선 레이스 중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폭로되자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바 있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 논란에 상원 정보위, 국방위를 통한 조사 의지를 밝히며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질주에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특히 불법 투표 주장은 당선에 만족하지 못하고 선거 정당성을 위협하려는 ‘집착증’적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미 CNN 방송은 “트럼프는 승리자로서 존경받으려는 욕망 때문에 자신을 더욱 인정받기 어려운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며 “자기가 짠 무대 속에 사는 경영자의 자리와 다른 이들의 규칙에 따라야 하는 대통령은 다르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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