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제동에 시간 압박 바빠져
하원보다 상원 통과가 더 힘들 듯
영국 대법원이 24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탈퇴(브렉시트) 협상을 개시하려면 먼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판결하면서,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진행을 위한 법안인 브렉시트 절차 개시 승인안을 조만간 의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협상 방향을 놓고 논쟁이 가열되면서 영국 정부의 계획대로 협상이 진행될지는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장관은 26일 브렉시트 절차 개시 승인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비스 장관은 “최대한 빠른 승인을 위해 법안을 단순화해서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테리사 메이 총리가 늦어도 27일 승인안을 ‘신속처리(Fast-track)법안’으로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법원은 이날 8대 3 의견으로 정부가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50조 발동은 영국이 EU이사회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하고 협상을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당초 영국 정부는 늦어도 3월 말 유럽연합과 브렉시트 협상을 개시할 계획이었지만, 대법원의 제동으로 이처럼 움직임이 바빠졌다. 의회를 설득해 3월 중순까지 법안을 통과시키고 3월 말 협상에 들어가려면 한시가 부족한 상황이다.
다만 정부는 대법원의 판결에 비교적 낙관하는 분위기이다. 데이비스 장관은 “브렉시트가 통과됐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며 “국민의 염원을 저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가 지난해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된 사안인 만큼 의회가 유권자의 뜻을 거역할 수 없을 거란 설명이다. 총리실 대변인도 “이번 판결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보수당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데다 EU잔류를 주장했던 야당들의 반발 또한 여전해 정부안에 대한 의회 논의 과정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집권 여당인 보수당의 일부 인사들은 EU 단일시장ㆍ관세 동맹 탈퇴를 뜻하는 ‘하드 브렉시트’에 대해 정부의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빈 월리엄슨 보수당 의원은 대법원 판결 직후 당내 친EU 성향 의원들과 긴급 회의를 열고 브렉시트 계획을 담은 백서 발간을 압박하기도 했다.
노동당은 브렉시트 법안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법안을 수정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노동자를 사회경제적으로 보호하는 조치가 담겨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야당인 자유민주당과 스코틀랜드국민당은 협상 개시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정부의 브렉시트 법안 통과는 사실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하원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이지만 빠른 상원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원 승인을 받으려면 322석이 필요한데, 브렉시트 찬성파가 302명에 달해 하원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원은 집권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자칫 비관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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