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사까지 풍파 견딘 유족들
공범 리 99년 무죄 떠올리며
법정서도 노심초사 가슴 졸여
“상고 기각” 최종 선고 듣고서야
“마음 홀가분해져” 안도의 눈물
#. “(조)중필이 어머님, 이제 그만 아드님 가슴에 묻고 보내주세요.”
1997년 4월 벌어진 ‘이태원 살인사건’을 다시 수사하고 공판도 챙긴 박철완(45) 부장검사가 법정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 이복수(75)씨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지난해 9월 13일 서울고법이 “1심 판단이 옳다”며 진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38)의 살인죄를 인정한 뒤였다. 70대 노모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만 하고는 쓸쓸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나요.”
#. 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제1법정. “상고를 기각한다.” 3초 남짓한 대법관의 말 한 마디에 핫팩을 쥐고 부들부들 떨던 제 두 손을 보던 노모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짧은 한숨을 토한 그는 말 없이 방청석을 떠났다. 다른 사건 수십 건이 먼저 선고되는 동안 거듭 심호흡하면서 가슴 졸였던 그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진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눈가를 매만졌다. 피붙이를 ‘재미 삼아’ 살해했다며 이씨의 가슴을 찢은 진범이 마침내 가려졌다.
무려 20년 만이다. 켜켜이 쌓인 이씨 가족의 응어리진 한이 늦으나마 제 자리로 돌아온 정의 덕에 풀린 듯했다. 이씨는 “하늘에 있는 우리 중필이도 좀 한을 풀었을 것이다. 진범이 밝혀지고… 자기 죽인 사람이 밖에서 활개칠 때 얼마나 (제 아들이) 속이 상하고 아팠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아휴.”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이 짧은 확정 선고를 듣기까지 모진 고통의 세월을 견디다 너무 늙어버렸다. 이씨는 99년 사라진 패터슨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진범을 잡아 달라고 국가기관을 찾아 다니면서 불편해진 다리를 이끌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이제 우리 가족도 한을 풀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해 1월 29일 1심 법원이 패터슨의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을 때도 “(사건 현장에 유일하게 패터슨과 함께 있던 친구) 에드워드 리도 (99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적이 있으니 지켜봐야 한다”고 노심초사하던 그였다.
이씨는 요새는 아들이 꿈에도 안 나온다면서 그리움을 내비치면서 “얘들 땜에 아들이 해보고 싶은 거 못 해보고 죽었는데 다음 생에는 부잣집에 태어나 바라는 것 많이 이뤘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지(아들)가 죽고 나서 (진범 단죄에) 여러 사람에게 도움 받은 것처럼 훌륭하게 자라서 우리 같이 어려운 사람들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건 초기 부실수사와 그에 따른 오판 등으로 긴 시간 지독한 아픔을 겪게 한 검찰을 향해선 “먼저 검찰은 너무 (수사 등에) 성의가 없어서 (난) 검사가 제일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재수사를 이끈 박철완 검사에게는 “잘 해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씨는 패터슨에게 살인을 부추긴 죄가 최종 인정된 공범 리에게는 “똑같이 20년을 살아야 한다. 한데 법이 그러니…”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가 18년 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 이번에 형사 처벌을 면했다. 이씨는 리와 패터슨이 30대 성인으로 법정에 다시 나와서도 서로를 진범이라며 다투는 광경만 봤을 뿐,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했다. 리 가족은 이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씨의 남편 조송전(77)씨는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아내 뒤를 따라 걸으며 짧게 말했다. “이제 중필이를 가슴에 묻어야지요.”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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