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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석 "아이폰보다 뗀석기가 더 위대한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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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석 "아이폰보다 뗀석기가 더 위대한 발명"

입력
2017.01.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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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천재'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가 대구 달서구청에 선보인 선사시대로 안내판 앞에서 작품 기획의도를 얘기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광고천재'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가 대구 달서구청에 선보인 선사시대로 안내판 앞에서 작품 기획의도를 얘기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대구 달서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입구 왕복 6차로 도로 한 편에 원시인이 돌도끼로 안내판을 내려치는 이색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 달서구 제공
대구 달서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입구 왕복 6차로 도로 한 편에 원시인이 돌도끼로 안내판을 내려치는 이색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 달서구 제공
'광고천재' 이제석이 만든 높이 2m의 선사시대 원시인 조형물. 피부와 털, 핏줄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구 달서구 제공
'광고천재' 이제석이 만든 높이 2m의 선사시대 원시인 조형물. 피부와 털, 핏줄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구 달서구 제공
대구 달서구 선사유적공원∼진천역 500m 도로에는 활짝 웃는 표정의 원시인 도로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대구 달서구 제공
대구 달서구 선사유적공원∼진천역 500m 도로에는 활짝 웃는 표정의 원시인 도로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대구 달서구 제공

“저게 머꼬, 도로표지판 위에 웬 원시인?”

최근 대구 달서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일대에 원시인이 대거 출몰했다. 이 공원에서 대구도시철도1호선 진천역까지 길이 500m 왕복 6차로 도로 양쪽에 돌도끼로 도로표지판을 내리치거나, 40∼70m 단위로 거리를 안내하는 원시인 배너가 동네 명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원시인의 털과 핏줄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높이 2m 원시인 조형물 등 21개의 작품은 달서구청이 공모전에 응모한 서울의 이제석광고연구소에 의뢰, 제작했다.

대구가 낳은 ‘광고천재’ 이제석(35)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는 24일 달서구청에서 “우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살아 왔던 만큼 잊고 지냈던 2만년의 역사를 ‘날 것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달서구청의 사업공모안을 보고 선사유적공원이 도심 안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아이폰보다 뗀석기(타제석기ㆍ打製石器)가 더 위대한 발명인데 사람들이 그저 돌멩이로만 여기는 게 안타까웠다”는 그는 ‘문명 속의 비문명’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이색광고물은 그의 광고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 흔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고 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는 “생활 속에 널려 있는 대상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영감’이 광고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원석을 다이아몬드로 가공하는 작업이 아니라 쓰레기를 보석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작한 광고는 하나같이 파격적이다. 부산경찰청 외벽에는 ‘총알같이 달려가겠습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총알이 뚫고 지나가는 이미지의 순찰차를 옮겨 놓았고, 이라크 전쟁 반전 포스터에는 원통형 전봇대의 특성을 살려 군인이 겨눈 총구가 결국 자신의 뒤통수를 겨냥하는 장면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또 2009년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장에 걸개그림 ‘코끼리 똥을 치우는 참새’를 내걸어 찬사를 받기도 했다. 강대국을 코끼리에, 개발도상국을 참새에 비유, ‘네가 싼 똥 네가 치워’라는 메시지를 강대국에 전한 것이다.

독특한 광고처럼 이 대표는 남들과 많이 달랐다. 고교 시절 만화만 그리다가 “그림으로도 4년제 대학갈 수 있다”는 말에 벼락공부를 했다. 2005년 계명대 시각디자인과를 4.5 만점에 평점 4.47로 수석졸업한 그는 취업문에서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시다 2006년 9월 미국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에 편입,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했다.

그는 재학시절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뉴욕 원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 광고계의 오스카상인 클리오 어워드 동상, 미국광고협회가 수여하는 애디 어워드 금상 등 내노라하는 국제광고제에서 단 1년만에 29개의 메달을 따게 된다. 미국의 최고 광고회사인 JWT와 BBOD 등 6곳을 종횡무진하던 그는 광고 엘리트 코스를 박차고 2009년 귀국, 서울 마포구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광고연구소를 열었다. “평소 꿈꾸던 광고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귀국 이유다.

그가 제작한 300여 개의 작품은 대부분 공익광고다. 자본의 무한경쟁 시대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탈행위지만 광고 제작에 관한 한 그의 기준은 분명하다. 바로 ‘희열’이다.

“광고 작업 하나마다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작품이 끝나면 수명이 깎이는 걸 느낀다”는 이 대표는 “생명과 바꿀 수 있을 만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면 작업할 생각이 없다”고 단언했다.

“백 마디 말보다 이미지 한 장의 힘이 더 큰 시대가 됐다”는 이제석 대표는 “역사에 남을 파괴력 있는 광고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구=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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