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계간 홀로 9호를 만들면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좌담회’를 기획했다. 나는 처음에 여성들이 남자친구에게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것을 ‘페밍 아웃’이라고 썼다가, ‘페미니스트 선언’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성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뜻하는 ‘커밍 아웃’에서 페미니즘의 ‘페’자만 떼어서 붙인 것은 ‘언어 도둑질’이었기 때문이다.
언어 도둑질은 소수자들의 언어를 권력의 구도에 대한 고려 없이 갖다 써서 맥락, 배경, 정치적 의미를 탈각하는 행위이다. 자신이 특정 취미에 몰두하는 ‘덕후(마니아)’라고 밝히는 것을 커밍 아웃에 빗댄 ‘덕밍 아웃’이 가장 보편적이고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용은 커밍 아웃을 단순히 ‘감추었던 것을 밝히는 행위’로 오인하게 하고, 성 소수자들이 당하는 구조적 차별과 억압을 희석한다. 성 소수자라서 각종 폭력에 노출되는 현실은 은폐된 채, 성 소수자와 마니아를 유사한 위치로 끌고 가버리는 것이다. 커밍 아웃은 차별에 맞서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을 가시화하는 정치적 선언이었지만 오염되어 정치성과 의미를 상실했다. 급기야 드라마 <도깨비>에서 남주인공(공유)이 결혼하기로 한 약속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것을 여주인공(김고은)이 ‘커밍 아웃’이라고 부르는 참사가 발생한다. 아…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언어 도둑질이 눈부신 순간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어에는 힘이 있다.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들은 이름을 얻는 순간 또렷해지고, 사회적 역학 관계를 폭로한다. 그래서 정확한 단어를 알맞게 배치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지만, 언어 도둑질은 무차별적이고 몰염치하다. 권력구조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억압이자 당사자를 부정하는 개념인 ‘혐오’를 단순히 감정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여성혐오’와 ‘남성 혐오’가 똑같이 나쁘다고 주장하거나, 중년 남성들의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캐릭터화한 ‘아재’를 친근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오ㆍ남용하다가 ‘아재 파탈’(아무도 안 쓰는)로까지 가버리거나, ‘억압’이라는 단어를 훔쳐 ‘동성애자들이 싫은 건 어쩔 수 없는데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니 이것은 억압이다’라고 억울해 하거나, 피해자나 약자들이 ‘연대한다’라는 말을 집단 괴롭힘 가해자들이 훔쳐, 누군가를 괴롭히려고 똘똘 뭉칠 때 쓰는 식이다.
얼마 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한 프로젝트가 올라왔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수자성’을 갖고 있으니 소수자에 대한 대상화를 멈추고, 이것을 다양성의 영역에서 접근하자는 취지였다. 이 프로젝트는 노인, 외국인 노동자, 성 소수자, 장애인 등에 X표를 치고 이들을 모두 ‘소수성’으로 호명한다. 그런데 이 소수성을 가진 자들로 빠른 년생, 배우가 되고 싶은 서울대생, 외동아들, 탈색한 남자 등이 제시된다. 앞서 X표를 친 사람들과 뒤에 예시로 든 사람들이 겪는 문제는 명백히 층위가 다르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기득권이지만, 차이와 결들을 삭제한 채 뒤섞어버린 것이다. 실재하는 차별이나 폭력을 겪는 이들에게, 이러한 분류는 매우 유해하다. 산술적 숫자가 적다거나 차별을 경험한다는 이유만으로 두루뭉술한 소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기만이자 착취이다.(다행히 제작자들은 SNS 상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문제를 인지하여, 프로젝트를 조기 중단했다)
새로운 언어의 출현은 그것이 이제까지 ‘말해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기존의 언어 체계가 누락하고 외면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들이 발굴한 언어는 쓰기 재미 있으라고 만든 유행어나 신조어가 아니다. 굳이 쓸 필요가 없는, 혹은 자격이 없는 언어를 겉보기에 맥락이나 쓰임새가 비슷해 보인다고 막 갖다 쓰지 말자. 언어에 내재된 의미를 훔치는 도둑질이다. 새로운 표현을 써먹고 싶어 근질근질할수록, 그거 아니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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