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권리에 영향” 판단 이유로
야당, 법안 수정 등 요구 계획
EU와 협상 계획 차질 불가피
영국 대법원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의회 승인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오면서 ‘하드 브렉시트’를 천명하고 EU와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협상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법원은 24일(현지시간) “8대 3 의견으로 정부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한다”며 “정부가 EU에 탈퇴 의사를 통보하려면 의회의 법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의회 동의 없이 브렉시트 협상 개시를 뜻하는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할 수 없다는 고법 판결을 재확인한 셈이다. 데이비드 뉴버거 대법원장은 “통상 조약 변경과 관련한 특권이 정부에 있지만 국민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예외”라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다만 스코틀랜드 및 북아일랜드 의회는 해당 판결에 구속되지 않는다.
앞서 고법도 대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의회 승인을 거쳐 EU 측에 브렉시트 협상 개시 의사를 통보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메이 총리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정부는 그간 50조 발동은 외교조약 체결 및 폐기 권한을 지닌 군주가 정부에 위임한 ‘왕실특권’에 해당돼 의회 동의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메이 내각은 일단 대법원 판결과 관계 없이 반드시 3월 말까지 EU 탈퇴 협상의 첫 단추를 꿰겠다는 구상이다. 제러미 라이트 법무장관은 “정부는 판결에 실망했지만 존중하며 판결 이행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판결로 의회가 법안 승인을 연기하거나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출구전략에도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리게 됐다.
야당인 노동당은 하드 브렉시트 완화 등 법안 수정에 나설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이날 판결 직후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해 50조 발동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겠다”면서도 “영국을 조세피난처로 만들지 않기 위해 법안에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당은 노동자를 사회ㆍ경제적으로 보호하는 조치들이 법안에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역시 패소에 대비해 의회 승인 절차를 염두에 두고 여러 초안을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정부가 대법원 판결 내용을 수용하고 논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4개의 법안을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메이 총리는 의회 표결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이르면 이번 주 협상 개시 관련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BBC방송은 “설령 야당 의원 다수가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더라도 집권 보수당이 하원(650석)의 과반(329명)을 점유하고 있는 이상 하원 승인을 얻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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