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의 계보

뉴스 패러디 앱을 활용해 제작해 본 가짜 뉴스 이미지. 제목, 기자 이름까지 모두 스스로 써 넣고 사진도 직접 고를 수 있다. 마치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언론사 기사를 캡처한 것처럼 보인다. 기사 속 그림은 게티이미지뱅크.

가짜 뉴스가 최근 별안간 등장한 것은 아니다. 만우절을 기념한 장난 기사, 비공개 뉴스의 옷을 입은 ‘찌라시(사설정보를 뜻하는 은어)’, 뉴스 패러디 등이 정보 시장을 파고든 것은 유구한 일이다.

‘만우절 가짜 뉴스’는 유력 방송, 신문 등도 마다 않는 고전적 놀이다. 영국 BBC의 뉴스쇼 ‘파노라마’는 1957년 4월 1일 스파게티가 열리는 나무를 소개했다가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문의전화를 받았다. ‘남극에서 하늘을 나는 펭귄떼가 발견됐다’(2008년 BBC), ‘프랑스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가 영국 정부 위촉 ‘패션 해결사’로 나선다’(2008년 가디언) 등은 매년 쏟아지는 유머형 가짜 뉴스다. 2003년 만우절에는 한 미국 네티즌이 CNN 뉴스를 모방해 ‘빌 게이츠가 암살됐다’는 가짜 뉴스를 제작했고, 며칠 뒤 MBC 등이 이를 받아 보도했다가 사과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파급효과를 노리고 편성한 가짜 뉴스가 나라 전체를 뒤흔든 일도 있다. ‘2006년 12월 13일 RTBF 속보 사건’이다. 벨기에 공영방송 RTBF는 당시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연방의 큰 축인)플랑드르가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는 긴급뉴스를 내보냈다. 왕궁, 국회 등 주요 공공기관과 시설에 기자가 급파돼 현장 생방송을 진행했고 주요인사 인터뷰까지 내보냈다.

약 30분 동안 온 나라가 우왕좌왕한 끝에 RTBF는 “이 방송은 픽션입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단일 국가 벨기에’에 대한 토론을 유도하려는 ‘다큐-픽션’이었다. RTBF에는 각계의 비난이 쇄도했다. 연방총리는 “현역 기자들을 동원한 공영방송의 무책임한 태도”에 항의했고, 사회당 당수 역시 “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남용했다, 이 땅에는 이런 장난이 설 자리는 없다”고 규탄했다.

국내에서는 국회, 사정기관, 기업 관계자들이 공유하는 찌라시가 각종 파문을 일으켰다. 유료 독자들에게 보내지는 사설정보지는 합법적 온라인 출판물 형태로 확인된 정보도 포함하고 있지만, 메신저를 통해 퍼지는 쪽지형 찌라시는 다수의 허위ㆍ비방 정보, 미확인 스캔들을 담아 여러 비극을 초래했다. 2005년 한 광고사가 이런 찌라시에 퍼진 연예인 125명의 소문을 정리했다가 해당 문건이 유출된 ‘연예인 X-파일 파동’이 대표적이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법무부와 경찰청 등은 “사설정보를 통한 허위정보 생산과 유통이 인권침해, 기업신용과 국가신인도 저해, 국론분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며 ‘허위정보 생산 유통사범 특별단속’을 실시했다.

인터넷 사용이 크게 확산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는 익명 게시글이 찌라시 같은 역할을 했다. 누구나 그럴듯하게 포장한 글과 사진을 올릴 수 있었고, 추천 댓글 좋아요 등의 보상이 주어지면서 허위 정보 제작도 대중화했다. 특히 광우병 사태, 천안함 침몰, 세월호 참사처럼 관심이 높고 의문이 많은 대형 사건일수록 사실 같은 거짓이 난무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선체 내 에어포켓에 갇힌 학생들로부터 구조해 달라는 문자가 왔다’는 글이 삽시간에 퍼진 것이 그 중 하나다.

여기까지만 해도 ‘전언’의 형태를 띤 거짓 정보에 머물렀지만, 최근의 가짜 뉴스는 엄연한 ‘뉴스’의 형태를 띠고 있다. 2000년대부터 놀이처럼 퍼진 ‘짤방’ 문화와 2013년부터 등장한 합성 앱 등 IT 기술의 발전이 거짓 뉴스를 부채질한다. 페이크뉴스, 짤방늬우스, 짤방제조기 같은 합성 앱은 몇 가지 사항만 입력하면 나머지 내용은 자동으로 채워 뉴스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애초에 ‘합성 놀이’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최근 대중을 대상으로 한 낚시질에 악용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를 표명했다거나, 영국 BBC가 촛불 집회를 비난했다는 가짜 뉴스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진짜 뉴스를 재료로 전혀 다른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예법을 어기고 퇴주잔을 마셔버렸다는 기사는 애초에 YTN이 반 전 총장의 행적을 보도한 화면이었지만 네티즌들이 의미를 부여해 유통시키는 바람에 논란이 됐다. 언론 역할을 하지 않는 인터넷 매체의 허위 보도도 한 몫 하고 있다.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의 허울을 갖고 있는데다, 일대일 메신저, 그룹형 채팅방 등 폐쇄형 네트워크에서 유포되면서 오히려 생명력을 갖는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폐쇄형 네트워크에서는 같은 생각과 정보를 공유한 사람들이 편견을 강화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을 강화하는 반면, 트위터 등 개방형 네트워크에서는 잘못된 정보에 대한 반대증거 등이 계속 제시되고 끼어들어 가짜 정보의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며 “문제가 된 가짜 뉴스, 루머, 연예인 사생활 동영상 등이 집중 유포된 경로는 예외 없이 폐쇄형 네트워크였다”고 분석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가짜뉴스의 함정(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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