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골프 관광객 현금 등 뺏고 감금
두테르테 대통령, 경찰청장 책임 안 물어
필리핀 경찰관들이 한국인 사업가를 납치ㆍ살해한 데 이어 골프 관광객들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일삼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24일 AFP 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루손섬의 관광도시인 앙헬레스에서 지난달 30일 한국인 관광객 3명이 불법도박 누명을 쓰고 현지 경찰서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행이 머무는 숙소에 들이 닥친 경찰들은 관광객들이 지니고 있던 현금 1만 페소(약 23만4,000원)와 컴퓨터, 골프 용품을 무단 압수했다. 이들은 8시간 동안 경찰서에 구금돼 있다가 몸값 30만 페소(약 700만원)를 낸 지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필리핀 경찰은 즉각 사과했다. 아론 아키노 중부 루손 지방경찰청장은 “한국인 관광객들은 골프를 치러 왔다가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경험을 했다”며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 7명을 전원 해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경찰관들의 사법처리는 피해자들이 필리핀에 체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전모는 피해자들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 신고하고 대사관 측이 필리핀 경찰청에 조사를 요청하면서 공개됐다.
앙헬레스에서는 지난해 10월에도 한국인 사업가 지모(53)씨가 마약 혐의를 뒤집어 씌운 현지 경찰관들에 의해 자택에서 납치된 뒤 마닐라 케손시의 경찰청 본부로 끌려가 살해됐다. 범인들은 지씨를 목 졸라 죽이고도 피해자 가족에게서 몸값 500만 페소(1억2,000여만원)를 뜯어냈다. 필리핀 검찰은 최근 현직 경찰관 2명 등 7명을 납치 및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에르네스토 아벨라 필리핀 대통령궁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인명 손실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한다”며 공식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휘 책임을 지고 21일 사의를 표명한 로널드 델라로사 경찰청장을 유임시키기로 해 “진정성이 없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심지어 두테르테 대통령은 같은 날 열린 델라로사 청장의 생일잔치에 직접 참석해 힘을 실어주기까지 했다. 아벨라 대변인은 “대통령은 델라로사 청장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고 말해 유임 결정을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