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국내 최대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 등 ‘관제데모’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사실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허현준 행정관과 자유총연맹 고위관계자가 2015년 말 주고받은 30건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확인됐다. 허 행정관은 메시지에서 “국정교과서 반대와 세월호 특별법 제정 1주기 대규모 시위에 맞서는 준비를 미리 구상하고 협의해 함께해 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그는 자유총연맹이 나서서 정부 정책을 홍보하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도 여러 차례 보냈다. 청와대가 보수단체를 동원해 여론조작과 정부 홍보에 이용하려 한 것이다.
청와대와 보수단체 유착의 이면에는 재정지원이 뒤따른 정황도 포착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관계자를 불러 조사한 결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013년 말부터 보수우파 시민단체 지원을 지시해 전경련 측에 부탁했다”는 진술을 받아 냈다. 이 과정에는 박준우ㆍ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가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지원은 ‘블랙리스트’를 통해 배제하는 대신 친정부성향의 단체는 돈을 주고 적극 양성한 셈이다. 조 전 장관은 특검 수사에서 어버이연합 등 우익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반대 집회를 연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어버이연합은 청와대 지시와 전경련 자금 지원을 받아 관제데모를 연 혐의로 지난해 초부터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2014~2015년 세월호 유족 반대 집회 등에 일당 2만원을 주고 1,000여명의 북한이탈주민을 동원한 의혹으로 시민단체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후 전경련이 어버이연합 측에 돈을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배후로 지목받은 청와대 실무진이 바로 허 행정관이다. 하지만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9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검찰은 “어버이연합과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이 많아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했으나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여태껏 어버이연합 사무총장과 허 행정관을 한 차례 그것도 비공개로 조사했을 뿐이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관제데모 지시 혐의를 검찰에 넘길 계획이다. 유신시절에나 있을 법한 관제데모는 블랙리스트에 못지않게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청와대의 사주와 극우단체의 꼭두각시 노릇이 드러난 만큼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 검찰은 이 사건을 흐지부지 넘기려 말고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