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시장 지켜 온 82세 정두례 ‘명태 할머니’
“비린내를 돈내(돈냄새)로 여기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50년간 시장을 지켜 왔는디… 불이 난 생각만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고 철렁거린당께.”
15일 새벽 전남 여수수산시장에 발생한 화재로 생계 터전을 잃은 정두례(82) 할머니는 지금도 화재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정 할머니는 수산시장이 터를 잡기 전부터 인근 도로변에서 생선 장사를 해 오다 1968년 수산시장이 개설되면서 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5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장을 지켜 온 정 할머니는 명태만 취급해 ‘명태 할머니’로 불린다. 20대 때부터 매일 새벽마다 시장에서 생선을 손질하며 일생을 보낸 정 할머니에게 이번 화재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설 대목을 맞은 24일 수산시장 인근에 마련된 임시 매장에서 만난 정 할머니는 “젊었을 때 꿈도 많아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그 당시에는 먹고살기 힘들어 남편 따라 생선 장사를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며 “시장 생활은 힘들고 고달팠지만 아들딸 결혼시키고 집도 장만하게 해준 곳”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여름철이면 시장 안 생선 비린내로 손님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냄새 난다’며 한마디씩 건넬 때면 당장 장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에 남 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다”며 “그럴 적마다 아이들을 마음의 위안을 삼고 견뎌 왔다”고 회상했다.
남편과 이웃들도 큰 힘이 됐다. 그는 “바깥사람은 물건을 떼어오는 일부터 온갖 잡일을 마다 않아 지금도 고마움을 느낀다”며 “시장 사람들도 친형제지간보다 더 서로를 위하며 살아 온 게 지금까지 버텨 온 힘”이라고 말했다.
여수시는 현재 피해 상인들이 당장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수산시장 인근 연등천변 배수장 공터와 천변 쪽 다리 위에 임시 판매장을 설치했다. 하지만 아직 영업을 하기에는 부족한 상태다. 간간이 건어물을 팔고 있지만 전기배선작업과 상하수도 시설을 끝내지 못해 활어 수족관은 텅 비어 썰렁한 모습이다.
여수시와 전남도가 제수용품을 시장에서 구매하기로 했지만 정 할머니는 걱정이 앞선다. 그는 “시장에 불이 났다니까 장사를 하지 않는 줄 알고 단골도 오지 않고 지나가는 손님도 발길이 뚝 끊겨 하루 매상이 평상시 10분의 1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정 할머니는 삶의 터전을 잃어 상처가 컸지만 희망은 잃지 않았다. 그는 “명절 대목에는 옛날부터 단골이 많이 찾아 흥이 났는데 언제쯤 정상으로 돌아올지 걱정이다”며 “그래도 전국에서 큰 관심을 주고 성금까지 보내 준 데 감사하며 하루빨리 시장에서 장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수시 교동에 자리한 수산시장은 여수사람의 어릴 적 향수와 추억이 깃든 곳이다. ‘여수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수산으로 도시가 번창하면서 붙여진 말로 이번 수산시장 화재는 여수 시민이면 모두 자신의 일로 여겼기 때문에 관심이 컸다.
정 할머니는 “한평생 비린 냄새에 젖어서 고생을 했지만 자식들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며 “주변에서 자식도 다 키우고 이제는 장사를 그만두라고 하지만 생선 장사는 내가 죽을 때까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시장에 매일 나오겠다”고 웃음을 지었다.
여수=글ㆍ사진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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