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폭력ㆍ학대 가슴 아픈데
체류 연장 신청할 때마다
“아이 챙기냐” “서류 가져오라”
출입국사무소 깐깐한 심사
언어적 한계ㆍ법률 지식 부족
“강제출국 당할라” 불안에 떨어
한국에서 결혼한 베트남 여성 A(32)씨는 “살림을 못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났다. 당시 A씨는 임신 7개월 만삭이었다. 홀로 출산한 석 달 뒤 남편과 시어머니가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며 아들을 데려가 버렸다. A씨는 가끔 어린이집에 들러 몰래 아들을 만나곤 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난해부터는 남편 방해로 아예 보지 못했다. 이혼소송을 통해 면접교섭권까지 받아냈지만 남편은 여전히 응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 A씨는 체류 연장을 할 때마다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집에서 쫓겨나고 자식을 빼앗긴 것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남편과 주소지가 다르다” “아이를 챙기지 않았다” 등을 따지며 모국으로 떠나라는 식으로 응대했다. 길어야 6개월, 짧으면 3개월짜리 체류 허가를 계속 갱신해야 했다. 그나마 지난해 10월 이주여성상담소의 법률지원 덕에 1년짜리 허가를 받은 상태다.
다른 베트남 여성 B(44)씨 사정은 더 딱하다. 그는 “한국말을 못 한다” “네가 집에 온 뒤로 되는 일이 없다”는 잦은 폭언에, 소금을 뿌리고 쫓아내는 등 시어머니의 학대를 당하다 남편과 협의 하에 별거에 들어갔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다시 같이 살거나 이혼 서류를 가져오라”라며 체류 연장 접수조차 거절했다. 최근 이혼소송이 끝났지만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행여 강제출국이 될 게 두려워 다시 체류 연장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시댁 및 남편의 학대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그 책임을 떠안아 국내에 머물 수조차 없는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 24일 국적법 및 법무부 내부지침에 따르면, 결혼이민비자(F-6)의 기간 연장이 가능한 ‘외국인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한 이혼의 경우에도 이혼 판결문 외에 각종 증거사진, 진단서, 주변인 확인서 등 귀책사유 입증자료를 엄격히 요구한다.
언어적 한계와 법률 지식이 부족한 이주여성 입장에선 이런 식의 피해사실 증명이 사실상 ‘책임 전가’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주여성 C(26)씨는 이혼소송 중 남편이 판사 앞에서 폭력 사실을 인정하고 위자료까지 받아냈지만 체류 연장이 되지 않았고, 통역사와 함께 추가 증빙자료를 낸 뒤에야 3개월짜리 체류 허가를 받았다.
적어도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남편 또는 아이와 따로 산다는 이유로 체류 연장을 거부하는 건 인권 차원에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초기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계청 자료(2015년 4월)를 보면 결혼 2년 안에 이혼하는 다문화가정은 전체 이혼의 41.2%로, 한국인가정(13.1%)에 비해 월등히 높다. 가정폭력과 인권침해가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강대중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주여성에게 유교적 가치관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원으로 어떻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위장 결혼의 통로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체류 연장 허가 여부는 꼼꼼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