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새내역(옛 신천역) 지하철 화재 사고(본보 23일자 14면) 초동 조치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대기하라”는 서울메트로 측 대응이 적절했는지, 즉각 대피를 택한 시민들이 옳았는지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논란에 불을 댕겼다. 박 시장은 사고 당일(22일) 밤 방송에 출연해 “승객이 대기하는 게 옳았다”고 밝혔다. “보통 이런 사고의 경우에는 전동차에 머무르는 게 안전하다”는 취지였다.
서울메트로 역시 23일 사고 관련 브리핑에서 ‘선(先) 대피’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김태호 서울메트로 사장은 “도쿄나 런던 등 해외도 사고가 정확히 밝혀지기 전에는 차 내에 있는 게 안전하다는 게 매뉴얼의 기본 지침”이라고 말했다. 관제소나 현장 기관사의 지시에 따르는 게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하다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도 이런 주장(선 판단 후 대피)에 힘을 싣는다. “제대로 된 (사고) 상황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승객들이 탈출하는 것은, 또 다른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15년 경력의 기관사 이모씨는 “지하철은 특수한 공간이라 어느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조치했을 땐 위험도 커지고 조치도 늦어진다“고 말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불길이 바로 커지는 사고가 아니라면 오히려 성급한 대피가 더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사고 장소가 선로 위라면 마주 오는 다른 전동차로 인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당시 상황을 보면 화재에 따른 연기가 전동차 내부로 들어오는 상황이었다”라며 “대피 도중에도 가스로 인한 질식이 우려되는 만큼 최대한 빠른 대피 지시가 필요했다”고 꼬집었다. 경우에 따라 최대한 신속히 행동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번 사고의 특수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예컨대 200여명이 숨진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는 유독가스(연기)가 피해를 급속도로 키웠다. 이런 참사를 기억하는 승객들에게 이번처럼 연기가 객실을 뒤덮는 상황에서 “일단 대기하라”고 하는 건 적절치 못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매뉴얼을 철저히 지켰다는 서울메트로의 주장도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다. 인터넷 등에선 “해당 매뉴얼이 공유되지 않은데다 승객 안전을 보장하는지에 대한 신뢰 자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사고 전동차는 화재 발생 15분 전부터 단전 사고로 불꽃이 튀는 등 이상이 발생했지만 끊어진 전선에 전기를 차단하는 응급조치만 하고 운행됐다.
이런 안전불감증이 승객들의 불안심리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남기훈 창신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이번 사고처럼 이미 열차의 상당 부분이 승강장에 정차한 상태였다면 화재가 발생했다는 말이 들린 즉시 안전하게 탈출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국민안전처는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후 전동차의 고장 조치 매뉴얼을 보완하고, 역사와 차량 내 폐쇄회로(CC)TV를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b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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