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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광장 민심과 50대 역할론

입력
2017.01.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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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갈망하는 촛불 민심

독주와 패권 구시대 이미지 거부

분권과 연대에 익숙한 세대 주목

50대 대선주자인 안희정(왼쪽ㆍ더불어민주당) 충남지사와 남경필(바른정당) 경기지사가 1월 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주먹을 맞대고 있다. 오대근기자
50대 대선주자인 안희정(왼쪽ㆍ더불어민주당) 충남지사와 남경필(바른정당) 경기지사가 1월 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주먹을 맞대고 있다. 오대근기자

“나이가 많아도 청년처럼 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청년이라도 생각이 늙은 사람이 있다.”1997년 15대 대선 때 김대중(DJ) 후보는 고령(73세)으로 건강상 대통령직 수행에 문제가 있고 새 시대에 맞게 사고하기 어렵다는 공격을 받자 이렇게 응대했다. 경쟁자인 이회창 후보보다 11세, 이인제 후보보다는 24세가 많았다. 1971년 7대 대선 때 김영삼, 이철승 등과 함께 40대 기수론으로 나이 많은 선배 정치인들을 밀어내는 데 앞장섰던 그가 거꾸로 세대 교체의 대상이 되었으니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그가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세대 교체론을 잘 방어해서라기보다는 DJP(김대중ㆍ김종필) 연합 등에 힘입은 결과였다. 청와대에 입성한 그는 대선 전부터 주창했던 정보화 산업에 박차를 가해 IT시대를 선도했다. 생물학적 나이는 많았지만 시대를 내다보는 나이는 누구보다도 젊었다.

이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의 고위공직자 65세 정년론은 틀렸다. 그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무원은 물론 장ㆍ차관 등 정무직 공무원들의 정년을 65세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여야 정치권으로부터“노인 폄훼” “시대착오적인 신(新)고려장 발상” 등의 격한 반발을 살 만했다. 생물학적 나이로 공직 담임 여부 기준을 정하자는 발상 자체가 어이 없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생각은 달랐다. 표 의원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여론조사(리얼미터) 결과, 고위공직자 정년 65세 제한 찬성 응답률이 54.7%에 이르렀다. 반대는 33.1%였다. 주변에서도 젊은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정치권에서 대선 도전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들에 대해 이런 저런 평가와 호불호가 갈리지만 대체로 젊고 새로운 인물을 선호하는 기류가 지배적이다.

DJ 등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을 때 야당 원로 유진산은 “구상유취(口尙乳臭), 아직 입에서 젖비린내 나는 것들이 무슨 대통령이냐”고 했다. 하지만 당시 인구 중 40대 이하 비율이 80%를 넘었고, 사회 각 분야에서 40대의 약진이 두드러지던 때였다.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 등의 정치 역량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시대가 세대 교체를 원했기에 그들의 40대 기수론이 통했다.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제기한‘50대 기수 연합론’도 요즘 시중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그는 18일 한국정치학회ㆍ사회학회 공동 시국 대토론회에서 “60대 이상 정치인들은 조건 없이 물러나고, 50대 정치인들이 연합하고 전면에 나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60대 이상 정치인들이 물러나야 할 근거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로 광장에 분출하는 촛불민심이 전혀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여망에 부응하는 정치가 출현해야 한다.

송 교수는 광장 민심이 요구하는 것은 “시대 교체”라고 했다. 여야 대선주자들 가운데 지지율 30%에 육박하며 부동의 1위를 달리는 64세의 문재인은 ‘정권 교체’를, 20%대로 그 뒤를 추격하는 73세 반기문은 ‘정치 교체’를 주장한다. 두 사람의 기세가 탄탄하지만 그들에게서 변화와 새로움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극구 아니라고 부인해도 그들에게서는 독주ㆍ독선 또는 구시대 이미지가 어른거린다. 열혈 지지자도 많지만 반대 세력 또한 강력하다. 대결과 반목의 정치에서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시대 교체는 22일 공식 출마선언을 한 52세 안희정의 구호다. 하지만 같은 50대인 남경필, 원희룡, 이재명, 유승민, 김부겸 등도 시대 교체와 세대 교체를 주장한다. 독점과 패권 대신 연합과 연대의 정치를 말해온 세대다. 이들 중 몇몇은 도정 등을 통해 실제로 권력을 나누고 협력하는 정치를 실천해 왔다. 30년 만에 정치와 사회의 새 틀을 짤 기회를 맞고 있는 지금 50대 역할론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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