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저금통 털어 나눔 실천
중학생이던 학생이 군인이 돼 월급 일부를 모아 보내오기도
“오늘은 땅끝지역아동센터 ‘돼지 잡는 날’입니다.”
20일 오후 전남 무안군 삼향읍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 고사리 손에 빨강 노랑 파랑의 조그마한 저금통을 든 30여명의 어린이가 방문했다.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 직원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오늘이 돼지 잡는 날’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돼지저금통을 털어 모두 81만5,520원을 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동전과 지폐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부상으로 받은 도서상품권도 눈에 띄었다.
이날 주인공들은 해남군 땅끝아동센터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1년에 한 번씩 돼지 잡는 날 행사를 갖고 있다. 올해로 9년째다. 돼지 잡는 날 행사는 아동센터와 영화배우 문근영씨와의 소중한 인연으로 시작됐다.
2006년 당시 센터의 전신인 땅끝공부방이 입주해 있던 건물은 매각결정이 내려져 문을 닫을 처지에 있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문씨가 3억원을 기부해 공부방이 유지됐고 이후 공부와 놀이를 함께 할 수 있는 아동센터로 탈바꿈했다.
당시 나눔의 소중함을 깊이 간직한 아이들은 한 해 동안 용돈을 아껴 모은 돼지저금통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 기부하는 나눔을 실천해 왔고 이제는 돼지 잡는 날이 전통으로 자리매김했다.
2008년 첫 해 17만9,550원으로 시작된 돼지 잡는 날 모금액은 2011년 37만7,200원, 2016년 71만8,840원 등 센터에 다니는 아동과 졸업생(?) 기탁금 등으로 매년 늘어나 올해는 80만원을 넘겼다.
이 센터에는 미취학생 1명을 포함해 초^중^고교생 등 모두 31명이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사 3명이 근무하고 있다.
땅끝아동센터 배다혜 사회복지사는 “9년 전 중학생이던 한 학생은 이제 군인이 되어 얼마 되지 않은 월급의 일부를 저금통에 모아 와 이번에 전달했다”며 “아동센터를 다닌 후 대학생이 된 선배들이 방학이면 후배들을 위해 해남까지 내려와 무료 학습지도까지 맡고 있다”고 자랑했다.
허정 전남사회복지 공동모금회장은 “어렸을 때 받은 사랑을 성인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돌려주는 모습이 뿌듯하고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무안=김종구 기자 sor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