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병원 리베이트 수수 의혹
의약품 납품업체 다이어리서
수사 지휘 간부 등 경찰 5명 이름
해당 간부들 인사 갈등설에
담당 수사팀도 수차례 교체되고
연루 병원장 자살까지
수사는 진척 없고 의혹만 무성
광주경찰청과 광주지역 병원들, 의약품 도매업체간에 얽힌 불법 리베이트 비리 커넥션 의혹이 마치 복마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업체 대표가 작성한 ‘리베이트 다이어리’에 수사 지휘 간부들을 비롯한 다수의 경찰관 이름이 등장하고 급기야 수사 부서까지 교체됐다.
광주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의약품 도매업체 A사의 리베이트 제공 의혹에 대한 내사에 나선 건 지난해 8월. “A사가 광주의 한 병원 관계자에게 의약품 납품 대가로 15억원을 줬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은 것이다. 당시 수사과장이었던 B총경은 A사의 대표가 자신의 고교 동창이었지만 “원칙대로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4개월 동안 사건을 조사했던 담당 수사관은 지난달 초 “리베이트로 의심되지만 A사와 병원 사이에 금전 차용 관계가 확인되는 등 특별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지능범죄수사대장인 C경정은 담당 수사관을 교체하고 수사를 계속 진행시켰다. 이를 놓고 경찰 내부에선 B총경과의 갈등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총경 승진 대상자였던 C경정이 경찰대 후배인 B총경에게 자신의 인사고과 성적을 낮게 준 데 대해 강하게 항의했고, 이후 앙금이 쌓이면서 A사에 대한 강제 수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C경정은 지난달 중순 B총경이 전남지역의 한 경찰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10여일 뒤 A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해 리베이트 제공 정황 등이 담긴 A사 대표의 2015년과 2016년 다이어리 2권을 확보했다. 이 다이어리엔 B총경과 C경정, 최초 내사를 진행했던 수사관 등 경찰관 5명, 세무공무원 1명이 A사 대표와 만나 식사를 한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리베이트 다이어리’에 예상치 못한 수사 지휘 간부 등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수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대하기 힘든 모양새가 된 것이다.
더구나 다이어리에 이름이 올려진 경찰관들을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C경정의 이름이 누락됐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경찰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절차에 따라 보고한다”고 했지만, 보고 누락 의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실제 당초 내사를 진행했던 수사관이 자신만 대기발령 조치되자 모 간부 등을 찾아가 “다이어리에 C경정의 이름도 나오는데 윗선엔 보고가 안 됐다. 왜 나만 대기발령을 받느냐”고 강력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다이어리에 이름이 언급된 한 병원장이 8일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데다, 일각에선 “C경정이 뒤를 봐주는 의약품 도매업체가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나돌면서 상황은 더욱 꼬였다. 결국 광주경찰청은 수사의 신뢰성마저 흔들릴 우려가 커지자 이달 초 지능범죄수사대에게 이번 사건에서 손을 떼게 한 뒤 형사과 소속인 광역수사대에 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맡겼다.
광주경찰청은 이처럼 수사를 둘러싸고 뒷말이 계속 나오자 수사팀 관계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상태다. 이번 사건을 맡은 광역수사대 수사관들은 이례적으로 수사와 관련된 내용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보안각서’까지 써냈다. 수사팀은 현재 광주ㆍ전남지역 8개 병원 의사들이 의약품 납품을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C경정의 이름이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건 A사 대표가 지난달 C경정을 만날 계획을 갖고 적어 놓은 것으로 실제로는 만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러나 수사를 둘러싸고 불거진 의혹들에 대해선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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