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한국시간) 취임과 함께 내놓은 정책 방향은 이날 오후 백악관 홈페이지에 제시한 6대 국정기조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ㆍ외교ㆍ고용ㆍ국방ㆍ법 질서ㆍ무역협상 등 분야별로 정책을 내놓으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이 함축하고 있는 고립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색채를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 주요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청사진”이라면서 “행정부 권한으로 가능한 정책과 의회 협조를 얻어야 하는 정책들이 함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6대 국정기조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은 트럼프 정권의 6대 국정기조 중 핵심이다. 국방력 강화, 불합리한 무역협정 재협상 및 탈퇴 등이 모두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트럼프 정부는 미국 이익과 국가안보에 초점을 맞춘 외교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힌 뒤, “힘을 통한 평화는 외교정책의 중심이며, 이 원칙은 갈등을 줄이고 공통 기반을 늘리는 안정적이고 더욱 평화적인 세계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권은 특히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 테러대응 수준에 머물렀던 이슬람국가(IS) 및 급진 이슬람 테러단체 토벌 방안을 대 러시아ㆍ대 중국 수준에 맞먹는 핵심 사안으로 제시했다. “IS와 다른 과격한 이슬람 테러단체들을 무찌르는 게 미국의 최우선 과제”라고 밝히면서 “이들 단체를 무찌르고 파괴하기 위해, 우리는 공격적인 공동ㆍ합동 군사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IS 퇴치를 위해 당분간 러시아와의 협력을 적극 모색하겠다는 구상을 간접적으로 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을 폭넓게 해석하면 미국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전도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ㆍ미ㆍ일 3각 동맹이 절실한 미국으로서는 과거사 문제로 한일간 갈등이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대신 사안마다 뚜렷한 입장을 표시할 수 있는 셈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한국이 정상외교의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먼저 회담을 갖는 게 한국에게는 그만큼 더욱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 군사력 재건
6대 국정기조 설명 자료에서 백악관은 “미군을 재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유는 예산감축 과정에서 미 군사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백악관에 따르면 해군 전함은 1991년 500척 이상에서 2016년 275척으로 줄었으며, 공군은 1991년의 3분의1 수준으로 축소된 상태다. 군사력을 전성기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트럼프 정권은 국방비 증액을 제도적으로 막아온 ‘국방 시퀘스터’를 의회 지지를 바탕으로 폐지할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 공격에 대비한 대책도 언급했다. 백악관은 “사이버 전쟁은 새로 부상하는 전장”이라며 “우리는 사이버 사령부를 중심으로 사이버 방어 및 공격 능력 개발을 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최정예 인재들을 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군사력 강화’기조에는 한국 안보와 민감한 현안도 포함됐다. 새로운 최첨단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이다. 백악관은 “이란,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최첨단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한미일의 MD 협력체계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로 국내 여론이 양분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최첨단 MD시스템 개발을 언급한 건 안보의 관심을 북한에 둔다는 의미”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비용부담을 최소화한 채 군사력 강화에 나선다면 한미동맹 차원에서 한국측 방위비 분담 규모를 높이라는 압력도 예상된다.
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
트럼프 대통령은 ‘엄격하고 공정한 무역협정’을 강조하며, 후보ㆍ당선인 시절 주장대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ㆍ나프타) 재협상 및 탈퇴를 선언했다. 백악관은 국정기조 설명에서 특히 나프타와 관련, “만약 협상 대상자(캐나다ㆍ미국)들이 미국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재협상을 거부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나프타를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통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검토 대상이 될 무역협정이 TPP, 나프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협정 위반사례를 전부 찾아내고 이를 시정하는 연방 정부 차원의 조처를 내리는데 모든 수단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윌버 로스 상무장관에게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를 가려낼 무역팀은 ‘가장 단호하고 똑똑한’ 인사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관련 업계가 불만을 제기한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논리다. 워싱턴에서는 이와 관련,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고전 중인 포드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 대한 농산물 수출이 크게 늘어나는 등 한미FTA가 미국에도 호혜적이라는 여론이 확산되는 만큼 극단적인 재협상이 폐기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에 물건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게 현지 투자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 이미 현대차가 31억달러 투자를 발표했는데, 특검 수사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삼성이나 LG는 물론이고 미국 수출물량이 많은 다른 기업들이 타깃이 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 에너지 계획
국정기조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에너지 정책의 두 축은 에너지 산업에 대한 규제 철폐와 자국 내 에너지 생산량 확대로 요약된다. 2012년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한 ‘기후행동계획(CAP)’과 수질 오염 방지 규제 폐지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난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변화 협정’에서 미국이 탈퇴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에너지 장관 내정자인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환경 문제를 관할하는 “에너지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며 기후변화 대응에 부정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규제 철폐로 앞으로 7년 간 미국 노동자들 임금이 총 300억달러 이상 오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동 국가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50조달러어치로 추산되는 미국 내 셰일ㆍ원유ㆍ가스 시추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국내 에너지 생산을 통한 수익으로 도로, 학교, 교량 등을 건설해 일자리도 창출하겠다는 복안이다.
일자리 창출과 성장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공장은 차례차례 문을 닫았다. 우리 일자리를 찾아오겠다”고 강조했듯 일자리 창출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다. 백악관은 국정기조 설명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30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국가부채는 2배로 늘었고, 미국인이 일자리를 차지하는 비율이 197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진단한 뒤 “앞으로 10년 간 일자리 2,500만 개를 만들고 연 4%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보수 정권답게 감세 정책도 내세웠다. 백악관은 “법인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를 인하하고 복잡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세법 체계를 단순화하겠다는 계획도 더했다. 2015년 기준으로 중소기업 운영자, 창업자 등에 대한 규제로 인한 손실이 2조 달러에 달한다며 관련 규제 완화 방침도 밝혔다. 미국 내 제조업 활성을 위해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재협상 의지도 밝혔다.
법 질서 회복
법과 질서 확립을 중시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백악관은 “2015년 워싱턴DC에서 살인이 50% 증가했고, 지난해 시카고에서만 총격사건이 수천건 발생했다”며 “거리에서 범죄와 폭력이 사라지도록 법 집행 관리들에게 힘을 실어 주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백인 경찰관 총격으로 흑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쟁점화하는 현상과 관련해 “경찰력에 대한 저항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경한 대처 방침을 밝혔다. 이와 함께 “수정헌법 2조에 보장된 총기 소지 권리를 모든 사법 체계에서 보장하겠다”고 밝혀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통제를 강화해 불법 이민자를 막고, 연방정부의 불법 이민자 통제 강화 정책을 따르지 않는 주를 의미하는 ‘피난처 도시(sanctuary city)’확산을 막겠다고도 공언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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