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前 금융위원장 이어
황건호 前투자협회장 선임 예정
“이사회 강화로 투명성 높일 것”
1등 회사 구색 갖추기 시작도

지난해 대우증권을 합병하며 국내 금융투자업계 1위로 올라선 미래에셋그룹이 최근 주요 계열사 이사회 의장에 ‘거물급’ 사외이사를 잇따라 앉히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모두 “이사회를 강화하겠다”는 박현주 회장의 강한 의지에 따른 것인데, 공격적 투자가 트레이드 마크인 ‘박현주표 경영 스타일’에 두 거물들이 어떤 견제와 지원 역할을 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이 19일 이사회를 열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데 이어, 미래에셋대우(미래에셋과 대우증권의 합병 증권사)도 다음달 이사회에서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을 의장에 선임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생명 역시 3월 안에 외부 인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그간 지배구조 관련 각종 잡음 속에 금융당국에 의해 경영진-이사회 분리가 사실상 ‘강제’됐던 은행권에 비해, 금융투자업계는 대체로 경영진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해오던 터여서 미래에셋의 이번 조치는 상당한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1차적으로 박현주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박 회장은 올 들어 “미래에셋의 덩치가 커진만큼, 책임경영을 위해 이사회의 독립과 외부 인사의 건강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 사외이사 중 이사회 의장을 선임해야 한다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올 3월부터 제2금융권에도 적용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업계에선 이 같은 미래에셋의 행보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선 같은 외부인사라도 ‘전직 장관’, ‘협회장’ 같은 거물급을 초빙하는 것은, 주목 받는 업계 1위사로서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들의 식견뿐 아니라 ‘이름값’도 꽤 고려했을 거란 얘기다.
한편에선 두 의장의 경력, 박 회장과의 친분 등을 두고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황 전 협회장은 1976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부사장까지 지낸 ‘대우증권맨’이다. 현행법은 같은 회사의 상근 임직원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는 걸 막고 있는데, 비록 합병 전 회사라 해도 황 전 협회장을 의장으로 두는 게 이사회의 견제기능 강화 의도와는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명시적인 위법은 아니지만 법의 미비점을 이용해 꼼수를 부린 셈”이라며 “시장의 긍정 평가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자서전에서 “1999년 미래에셋증권 설립 당시 많은 조언을 받았다”고까지 밝힌 김 전 위원장과 오랜 인연이 있다. 김 전 위원장이 공직에서 물러난 뒤, 취업제한 기간 2년이 지나자마자 2015년 3월 그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도 박 회장이었다. 일각에선 두 거물 모두를 두고 “박 회장과 호흡은 잘 맞겠지만 견제 역할까지 제대로 하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박 회장의 의지는 확고하며, 적당히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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