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에 받은 감동 갚고 싶어”
여성들 보답하는 청혼 유행
반지처럼 틀에 박힌 선물 대신
손수 글씨 새긴 커플도장이나
남편임명장ㆍ통장 편지 이벤트
일각 “신경 쓸 일 더 생겨”지적

두 살배기 아빠 이모(30)씨는 ‘그날’만 생각하면 미소가 샘솟는다. 지금 아내인 여자친구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프러포즈한 뒤 결혼 준비를 하던 재작년 겨울, 그녀 손에 이끌려간 한 식당에서 이씨는 깜짝 놀랐다. 꽃다발과 함께 ‘Will You Marry Me?’(결혼해 줄래?)라고 적힌 상자를 건네온 것. 주변 친구 중 프러포즈를 받은 최초의 남자가 된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프러포즈가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답프러포즈’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답프러포즈는 예비신랑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예비신부가 다시 되돌려주는, ‘보답 청혼’을 뜻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는 ‘#답프로포즈’라는 해시태그(특정 핵심어를 편리하게 검색)가 달린 게시물이 1,500여 건 이상 올라와 있고, 여성 회원 비율이 높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비법과 후기가 담긴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프러포즈전문 레스토랑 메이드바이유 관계자는 “2, 3년 전만 해도 답프러포즈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는데, 이젠 청혼을 하려는 여성 고객이 전체의 10%나 된다”고 말했다.
‘등 떠밀려’ 준비하는 일부 남자들의 프러포즈가 값비싼 식사와 고가 반지 등 틀에 박힌 관습에 매여있다면,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답프러포즈는 남다르고 독특한 선물이 혼인의 값진 의미를 되새긴다. 신혼 집 계약이나 혼인신고 때 사용할 커플도장이 대표적이다. 캘리그래피(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를 직접 배워 선물에 뜻 깊은 문구를 새겨 넣거나, 남편임명장을 만들어 수여하기도 한다.
특히 ‘통장편지’가 주목을 끈다. 따로 은행계좌를 만든 뒤 일정기간 인터넷으로 매일 돈을 이체해야 한다. 돈을 넣을 때마다 그 내역을 손수 적도록 하는 입금메시지를 활용하는 방식인데, 글자 수가 1회 이체에 일곱 자로 제한돼 있어 거르지 않고 넘치는 사랑과 서약, 사연을 담으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벤트업계 관계자는 “여자분들은 남자 고객에 비해 원하는 바가 구체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했다.
답프러포즈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해결하기도 한다. 최근 답프러포즈를 했다는 한 네티즌은 “잦은 다툼으로 결혼을 포기하려던 차에 (현재의) 남편이 프러포즈 당시 만들었던 영상을 보게 됐고 그때 받았던 감동을 (답프러포즈로) 돌려주며 풀고 싶었다”고 말했다.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자도 누군가를 선택할 권리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남녀 간 위계질서, 성 역할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답프러포즈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풀이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남들 다 하는 것’이라는 기준이 하나 더 생기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것 많고 돈 들어가는 곳도 많은데 답프러포즈는 과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돈으로 포장하기보단 애정과 정성이 넘치는 결혼 전 또 하나의 이벤트로 즐기는 분위기다. 사랑한다면 그 무엇이 아까우랴.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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