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밝힌 사유 중 하나는 “공범인 뇌물수수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뇌물수수자로 지목된 박근혜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아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부회장을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뇌물수수자와 공여자를 함께 조사한 뒤 신병 처리 여부를 결정하는 통상적 뇌물 사건 수사 수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뇌물 공여자를 구속한 뒤 진술을 받아내 수수자를 조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그리 상례에 어긋난다고 볼 수만은 없다.
어쨌든 이 부회장을 구속한 뒤 박 대통령을 겨누려던 박영수 특검팀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수사의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당장의 재시도에는 적잖은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애초에 수사의 최종 목표를 박 대통령으로 삼았던 특검팀으로서는 무게 중심을 박 대통령 쪽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 특검팀의 1차 활동 종료 시한이 2월 말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수사 시간의 제약을 받는 점도 현실적 이유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에만 매달리다가는 자칫 이번 수사의 핵심인 박 대통령 수사 일정이 촉박해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의 미르ㆍK스포츠재단 강제 출연과 최순실씨 모녀 지원과 관련해 받고 있는 혐의는 뇌물죄 외에도 직권남용과 강요죄 등이 있다. 이미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최씨 등을 직권남용과 강요죄로 기소하면서 박 대통령을 “공범”이라고 적시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해 다른 대기업 총수들도 뇌물공여 혐의를 벗기 위해 “대통령의 강요로 돈을 뜯겼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펴 왔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박 대통령의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는 더욱 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과 최씨에 대한 조사부터 서두르는 게 보다 효과적인 수사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특검팀이 최씨에게 21일 소환을 통보하고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받겠다고 나서서 눈길을 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도 당초 계획대로 2월 초에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최씨와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대기업에 대한 뇌물죄 적용 여부도 확실해질 터이고, 그때 가서 영장도 다시 청구할 수 있다. 난관에 부닥친 특검팀에, 신속한 박 대통령 조사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