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가습기특별법)이 1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와 폐손상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후 6년 만이다. 하지만 제조업체 등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결국 빠졌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미완의 특별법’이란 비판이 나온다.
국회는 20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재적 156명 의원 중 찬성 154명, 기권 2명으로 가습기특별법을 가결했다.
법안은 정부가 공식 인정한 피해자 중 구제급여(요양급여, 장의비, 간병비 등) 지급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피해자 등을 위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특별구제계정’을 설치해 운영하도록 했다. 계정 한도는 최대 2,000억원으로 했다.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와 원료물질 사업자의 분담금으로 충당한다. 옥시 레킷밴키저 등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내는 분담금 총액은 1,000억원이다.
또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구제급여 지원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ㆍ의결하기 위해 환경부 소속으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위원회를 두고, 위원회 내에 폐질환조사판정전문위원회와 폐이외질환조사판정전문위원회를 두는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특별법의 핵심이었던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은 결국 무산됐다. 악의나 중대과실로 큰 피해를 낳는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3~10배 더 많은 돈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당초 발의된 법안 대부분에 담겨 있었지만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논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2008년부터 옥시가 제조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가 2015년 아버지를 잃은 김미란(42)씨는 “국민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기업 위축을 우려하며 징벌적 배상 의무를 지우지 말자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정부의 책임 조항이 빠진 점도 논란거리다. 국회 환노위는 지난달 예산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당초 정부 기금을 포함했던 구제기금 내용을 제조사들만의 기금으로 조성되는 특별구제계정으로 바꿨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관계자는 “정부의 부실한 관리에 따른 책임이 국정 조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확인 됐지만 피해구제기금 출연을 거부하고 있다”며 “정부도 명확히 잘못을 인정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 신고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최대 2,000억원으로 제한된 특별구제계정으로 감당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현재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380명으로 이중 1,122 명이 사망자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 사례가 더 나올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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