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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이 말 같지 않아 보이니 어찌할 것인가

입력
2017.01.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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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토토!

조은영 글·그림

보림출판사 발행ㆍ40쪽ㆍ1만2,000원

말을 좋아하는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경마장을 찾지만 곧 실망한다. 그곳의 주인공은 말이 아닌 한탕주의에 찌든 어른들이었기 때문이다. 보림출판사 제공.
말을 좋아하는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경마장을 찾지만 곧 실망한다. 그곳의 주인공은 말이 아닌 한탕주의에 찌든 어른들이었기 때문이다. 보림출판사 제공.

몇 달째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상한 대통령과 둘레의 속물들이 나라 꼴을 후줄근하게 만들어 놓은 까닭이다. 드러난 폐해가 다채로워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분노와 실소를 자아내는 이야깃거리도 각양각색인데, 그 가운데 ‘말 이야기’도 있다. 세상일이란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니, 흙수저 부모들의 처지에서는 어쩌면 그것이 사태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말 이야기 하나 보탠다. 이 그림책은 한 아이의 ‘경마장 관람기’다. 말을 좋아해서 말 인형을 끼고 사는 여자아이가 할아버지를 따라 난생처음 경마장에 간다. 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말을 보러 갔는데, 정작 그곳에서 말은 풍경의 일부일 뿐 보이는 건 한탕주의 욕망과 욕망에 찌든 군상들이다. 어쨌든 경주는 시작되고, 아이는 9번 말에 제 인형의 이름을 붙여 응원한다. “달려, 토토!” 찌든 눈보다 맑은 눈이 밝은 법. 토토가 우승을 차지하고, 아이는 그저 토토가 잘 달린 게 기쁠 뿐인데 어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는 담담히 “사람들은 화를 내거나 슬퍼했다”라 표현하고 있지만, 어른들은 필경 예상지를 찢고, 마권을 구겨 팽개치고, 욕설을 내뱉으며 줄담배를 피워 댔으리라. 할아버지는?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집에 가자고 했다.” 손녀가 곁에 있으니 속으로 분을 삭였을 테지. 그러나 아이들도 알 건 다 안다. “할아버지, 돈 많이 못 땄어?” 이어지는 이 책의 끝 문장은 다음과 같다.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경마장에 갔다. 그런데 점점 지겨워졌다. 그리고 나는 토토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사실 토토를 다시 본다 한들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말들이 다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경마도 다른 도박과 똑같은 야바위다. 돈도 정보도 부족한데 한탕의 욕망만 들끓는 다수대중의 푼돈을 긁어모아, 이미 정해져 있거나 혹은 어쩌다 얻어걸린 소수에게 일부를 몰아주고 나머지 대부분은 판을 벌인 자들이 쓸어간다. 그 야바위판을 달리는, 욕망과 협잡이 투사된 말들이 아이의 맑은 눈에 점점 똑같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독일의 전용 마장에서 어느 젊은이가 타던 그 말도 경마장의 말들과 다르지 않다. 이 나라 일등 재벌이 권력의 측근에게 수십 억원짜리 말과 함께 수백 억원을 몰아준 대가로, 다수대중의 수천 억원을 집어삼키고 수십 조원의 경영권을 챙기는 신묘한 야바위판을 벌였다. 그 다수대중은 한탕을 좇는 도박꾼이 아니라 평범하고 성실한 국민들이요, 그 돈은 헛된 욕망을 건 판돈이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 모은 노후자금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 재벌 총수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말은 순한 눈과 늘씬한 자태, 고고한 성격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동물이다. 그러나 이젠 맑은 아이들에게도 말이 말 같지 않아 보일 것이다. 이를 어찌할 건가. 맑은 아이마음이 담긴 그림책 ‘달려, 토토!’는 작가의 조형적 천재성이 곳곳에서 반짝이는 멋진 작품이다. 그런 작품을 두고 작품 외적 이야기를 늘어놓아 몹시 미안하다. 언제나 뻔뻔함은 저들의 것이요, 오직 미안함만 우리의 몫이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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