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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도깨비

입력
2017.01.2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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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피크TV’기사가 많았다. ‘피크TV’는 미국과 영국에서 드라마 시청이 가능한 새로운 매체가 늘어나 드라마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상을 가리킨다. 2015년 400개, 지난해450개 이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올해는 500개가 넘는 드라마가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5년간 케이블 또는 디지털 방송 등의 드라마가 71% 증가했다고 한다.

나는 1999년 미국 갱스터 드라마인 ‘더 소프라노스’로 미국 TV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 이후 카우보이 이야기인 ‘데드우드’, 광고회사 이야기인 ‘매드맨’, 그리고 수사물 ‘더 와이어’ 등 여러 미드를 봤다. 이러한 미드는 모두 미국 문화와 역사, 정치에 대한 분석과 견해를 담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최근 쏟아진 영미 드라마의 양에 거의 압도돼 지난해는 그 대신에 한국 드라마를 보리라고 다짐했다.

한국에서 8년을 살았지만,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지는 않았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의 인기 드라마는 ‘아이리스’였다. 이 드라마를 보려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전체적으로 너무 과장된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 그 다음이 ‘별에서 온 그대’인데, 금방 지치고 말았다. 남주인공은 너무 차갑고 여주인공은 짜증스러웠다. 무엇보다 두 주인공 모두 너무 거만했다. 올해 ‘도깨비’를 통해 비로소 한국 드라마에 빠지게 되었다. 도깨비는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로 영원히 죽지 않는 939세 도깨비 이야기이다. 도깨비는 자신의 신부가 될 여자 도깨비를 찾아야 비로소 편안히 죽을 수 있다. 오직 그만이 도깨비 칼로 그에게 평안한 죽음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나는 이 드라마를 헬렌 오이예미라는 영국인 작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드라마에 중독됐다면서 이 드라마에 한국 문화가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궁금해 했다.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이 물음은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가, 삶이 예술을 모방하는가”라는 오랜 질문으로 이끈다. 플라톤은 예술은 삶의 모방이며 모든 예술은 어떤 식으로든 삶을 반영한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예술이 현실을 왜곡시키는 힘을 가졌다고 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믿었다. 한국 드라마 도깨비에 중독된 나는 이 인기드라마에 한국의 특정 모습이 투영된 것인지, 아니면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드라마 주인공과 닮아가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도깨비는 재미있고 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도 흥미롭다. 도깨비와 저승사자 사이의 우정도 재미있다. 도깨비와 지은탁의 로맨스는 귀엽고 감동적이며 우습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 대한 드라마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도깨비는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방치된 사람들을 위한 수호천사 역할을 자처한다. 그는 자살을 하려는 판자촌 남자를 구하고, 왕따를 당하는 학생에게 시험 정답을 가르쳐준다. 저승사자는 장님인 남자에게 그의 개가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바람 피우는 남편과 사악한 사장에게는 지옥에 갈 거라고 말한다. 여주인공 지은택은 안타깝게 죽은 20대 여자의 유령을 도와준다. 그녀는 유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원룸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어 어머니가 자신이 배곯고 살다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사람들은 소위 ‘헬조선’에 사는 사람들이다. 방치된 사람들, 돈이 없어 더는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드라마 도깨비는 초자연적 존재를 통해 고질적 사회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한다. 유치원 때부터 학원에 다니고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며 자살률이 가장 높고, 연금으로 살아야 할 많은 노인들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이 곳에서, 사람들은 도깨비 같은 초자연적 존재를 유일한 희망으로 여기는 걸까.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대기업이 모두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 챙기려는 모습에 실망하고 질렸을 한국인들은 도깨비라는 재미있는 드라마를 선물 받을 자격이 있다.

배리 웰시 서울북앤컬쳐클럽 주최자ㆍ동국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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