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기계체조 국가대표 이은주(18ㆍ강원체고)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낳은 최고 스타 중 한 명이다. 경기 결과를 떠나 ‘작은 행동’ 하나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은주는 기계체조 예선이 끝나자 북한 체조 선수 홍은정(28)에게 다가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권유했고, 홍은정이 흔쾌히 수락하면서 둘은 활짝 웃는 얼굴로 셀피(셀프카메라 사진)를 찍었다.
토마스 바흐(64)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사진을 찍기 위해 앞으로 뻗은 이은주의 왼손을 두고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이라고 치켜세웠다. 해외 언론들도 “한반도는 공식적으로 휴전 상태이지만 이 사진은 남북한 사이의 작은 평화를 만들어냈다”, “모두를 하나로 묶는 올림픽의 힘은 여전하다”고 극찬했다.
잊지 못할 2016년을 보낸 이은주는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18일 2017년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을 마치고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 체조연습장에서 만난 이은주는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던 경험을 살려 관심이 부족한 여자 기계체조가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좋은 성적을 내겠다”며 “2020년 도쿄 올림픽 때는 단체전 출전권도 따내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주의 리우 올림픽 참가는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이고임(17)이 리우 현지에서 훈련 중 왼팔 골절상으로 출전이 불가능해지면서 2위 이은주가 리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대회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탓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개인종합 53위에 그쳤다. 이은주는 “올림픽에 갑자기 나가야 한다는 말을 처음에 안 믿었다”며 “그 말을 듣자마자 다른 종목(태권도ㆍ탁구) 선수들과 함께 곧바로 리우로 떠났고, 대회 5~6일 전에 도착을 해서 시차 적응도 제대로 못했다”고 돌이켜봤다.
비록 성적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지만 경험이라는 값진 소득을 얻었다. 이은주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경기에서 실수가 나왔다”며 “미국이나 유럽 쪽에 잘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다르고, 팀 동료끼리 힘을 불어넣어준다. 수 많은 관중의 환호도 즐길 줄 알더라. 반면 우리 팀은 나 혼자 밖에 없어 더 긴장했다”고 밝혔다.
홍은정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관심을 받을 줄 몰랐다”며 “리우에서 인터뷰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서는 ‘이제 좀 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에도 방송 카메라가 많이 왔다”고 웃었다. 이어 “북한 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선수들하고도 사진을 찍었는데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내가 기념으로 먼저 같이 찍자고 했다”면서 “부모님도 ‘우리 딸이 갑자기 TV에 많이 나온다’고 좋아하셨다”고 덧붙였다.
올림픽에서 경쟁 선수들과 기념 사진으로 추억을 남긴 그의 바람은 국제대회 시상대에 올라 셀피를 찍는 것이다. 이은주는 “이번에 사진으로 큰 이슈가 됐는데 다음 번에는 아시안게임이나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시상대 위에서 셀카를 찍고 싶다”며 “현재 동계훈련을 통해 기초 체력과 힘을 키우고 본격적인 시즌에 들어가면 기술적인 부분도 훈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마루, 도마, 이단평행봉, 평균대 네 종목 가운데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은 이단평행봉이다. 이은주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종목이기도 하고, 올림픽 때 네 종목 중 그나마 가장 좋은 점수(13.500)를 받았다”면서 “연기할 때 물구나무 자세와 발 끝이나 무릎을 깔끔하게 보일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은주는 일본 야마구치시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우연히 길을 걷던 중에 누군가 철봉에 매달려 있는 포스터를 보며 ‘철봉을 돌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궁금증에 기계체조를 10세 때 시작했다. 이은주는 “엄마가 운동을 해서 건강해야 공부도 잘 되고 그런다고 해서 운동 하나를 골라야 했다”면서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추)사랑이가 체조교실을 간 방송을 봤는데 나도 사랑이처럼 재미 있게 했고, 하루 하루 실력이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2013년 3월 ‘한국에서 체조를 하면 어떠냐’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 강원체중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일반 학교를 다녔음에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줄 알아 일상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한글을 잘 몰라 학교 시험을 볼 때 쩔쩔 매기도 했다.
이은주는 “처음엔 글을 잘 못 읽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시험도 잘 본다”며 자신한 뒤 “일본에 계시는 부모님을 1년에 한번 밖에 못 보지만 늘 ‘다치지 말고, 즐겁게 체조를 해라’는 말을 해줘 큰 힘이 된다. 지난달에 6일 정도 일본 집에 다녀왔고, 다가오는 설날은 원주에 계시는 할머니 댁에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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