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부회장의 혐의가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매우 유감”이라면서도 “영장 재청구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원의 판단에 반발하는 여론도 있지만, 법리적 판단을 우선한 법원의 결정을 일단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많다. 영장 기각을 계기로 특검의 관련 수사가 있는 그대로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원칙에 더욱 충실해지길 기대한다.
조희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 정도로 볼 때 구속의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최순실씨 측에 금전적 지원을 한 것은 맞지만 대가성이 없다는 삼성 측 항변을 감안하면 문제의 돈을 뇌물로 볼 수 있을지는 다툼의 여지가 크다고 판단한 셈이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도 고려됐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영장 기각이 수사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최종적 평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법원의 결정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바는 아니다. 다만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청산을 바라는 국민적 요구에 바탕한 특검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는 상징적 의미는 부정하기 어렵다. 법리적 측면에서, 대통령 측에 전달된 돈은 별도의 청탁이 없더라도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한 판례가 있다는 점에서‘대가성’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커질 전망이다. 법원이 ‘증거 인멸의 우려’를 충분히 가리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남은 법 절차에서 더욱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으로 특검팀의 수사 동력에 어느 정도의 차질은 불가피해졌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핵심 연결고리로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를 정면 돌파하려던 당초 계획을 일부 수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특검팀은 영장 재청구와 불구속 기소 방안 두 가지를 놓고 고심 중이라지만, 어느 경우든 법원에서 확실하게 대가성을 인정받지 못한 만큼 추가 수사에서는 혐의와 증거부터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 특검팀이 밝혔듯,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도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
특검팀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무너진 법치와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지난 한 달간 특검팀은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로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앞으로도 국민적 성원을 바탕으로 심기일전해 엄정한 수사를 이어 가되, 철저히 법 원칙에 의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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