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돼 삼성그룹은 일단 총수 부재란 최악의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인 사실은 변함이 없어 삼성 앞에 펼쳐진 가시밭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19일 서울중앙지법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뒤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이 부회장은 집이 아닌 삼성 서초사옥으로 향했다.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 주요 팀장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주재해 현안을 챙기고, 향후 법적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인데다 이 부회장 등이 기소될 경우 장기간 재판을 통해 유무죄를 다퉈야 하는 만큼 긴장 속에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 측은 “불구속 상태에서 진실을 가릴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이날 일상적인 경영 활동을 마치고 귀가했다. 이런 행보는 경영에 대한 이 부회장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지만, 한편으론 해외 투자자 등에게 ‘삼성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만큼 삼성은 위기 상황이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해 11월부터 삼성은 고위임원 인사를 무기한 연기했고, 올해 업무 및 신규 채용 계획 등도 아직 수립하지 못했다. 역대 최대 규모 해외기업 인수합병(M&A)인 미국 전장기업 하만 인수도 삐걱거리고 있다.
불구속 상태의 이 부회장이 그룹 현안을 어느 정도 챙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해외 기업 M&A와 사업재편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구치소 문턱까지 갔던 이 부회장의 모습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다.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2014년 5월 경영 전면에 나선 이 부회장은 지난해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조기 단종 사태에 이어 뇌물공여 피의자가 돼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롯데ㆍSKㆍCJ 등 미르ㆍ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다른 대기업들은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에 한숨을 돌렸어도 특검이 대기업 수사를 확대할 뜻을 내비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영계는 법원의 신중한 판단을 존중하고, 많은 의혹과 오해가 사법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해소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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