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물가 위기에 다시 열려
배추 조기 출하ㆍ축산패커 육성
가공식품 가격 감시 등 내놔
“이미 나온 대책… 전시행정” 비판
일부선 “시장 감시 효과” 주장도
정부가 4년 만에 장관급 물가대책 회의를 열고 연일 치솟고 있는 ‘장바구니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그러나 ‘장관급’ 이름표를 제외하면 최근 열린 물가대책 회의들과 다를 게 없어 서민들의 체감물가를 잡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19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물가안정을 위한 대응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공정거래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총출동’했다. 장관급 물가대책 회의가 열린 것은 2013년 2월 이후 4년만이다. 유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최근 기상 악화, 조류 인플루엔자(AI) 등으로 채소와 계란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이 크게 상승해 서민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농산물, 가공식품, 지방공공요금 안정에 집중, 실제 생활 현장에서 물가가 안정되는 분위기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봄배추 2,000톤을 4월 이전 조기 출하하는 등 농축수산물 비축 물량을 확대 공급하기로 했다. 또 계란 등 원재료 가격 인상에 따라 급등 기미를 보이고 있는 가공식품에 대한 가격 감시 활동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 동향을 매일 점검하는 방안도 담았다.
중장기 유통구조 개선 방안도 눈길을 끌었다. 정부는 계약 농가의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는 대신 안정적인 수급 의무를 부여하는 ‘생산ㆍ출하안정제’ 재배 비중을 현재 총 생산량의 8%에서 오는 2025년 35%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축산패커’(생산ㆍ도축ㆍ가공ㆍ판매까지 일관 체계를 구축한 경영체)를 육성해 유통단계를 축소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산지 가격은 큰 변화가 없는데도 복잡한 유통 단계를 거치며 최종 소비자가가 폭등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서다.
정부가 장관급 물가대책 회의를 연 것은 물가를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어서 주목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장 감시를 강하게 하겠다는 ‘신호’를 주는 것만으로도 분위기에 편승한 제조업체의 무분별한 가격인상이나 유통업자의 가격교란 행위를 억제하는 효과는 분명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물가를 잡을 만한 뾰족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비판도 나온다. 사실 이번 회의에선 지난 ‘제2차 물가관계차관회의’(16일)와 ‘설 민생안정대책’(10일) 등에서 나온 대책들이 다시 반복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똑같은 내용으로 2주 동안 회의만 반복하는 모습은 ‘보여주기식’ 전시 행정을 떠 올리게 한다”며 “배추 등 일부 농산품 가격 상승폭이 심상치 않았던 작년 하반기에는 뒷짐 지고 있다 이미 오를 만큼 오르고 난 다음에 뒷북을 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중장기 유통구조 개선 방안도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농산물발(發) 물가 파동이 반복되는 근본적 원인은 다단계처럼 복잡한 농축수산물 시장의 유통구조에 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 때부터 이러한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대책이 이어졌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실정이다.
정부가 맹탕 회의와 대책을 반복하는 사이 물가는 앞으로 더 오를 태세다. 소비자물가지수(CPI)의 미래를 보여주는 생산자물가지수(PPI) 오름폭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생산자물가지수(2010년 100기준)는 2015년 12월에 비해 1.8% 상승했다. 이는 전년 동월 기준 2012년 4월(1.9%) 이후 최고 상승폭이다. 지난해 생산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비)은 10월까지 내내 마이너스를 기록하다 11월 0.7% 상승으로 돌아선 후 가파르게 뛰고 있다.
품목별로 보면 농림수산품이 1년 사이 7.3% 올랐고, 공산품(2.3%)과 서비스요금(1.3%)도 크게 뛰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전력ㆍ가스ㆍ수도요금은 7.5% 하락했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생산자가 국내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지수다. 상품 777개, 서비스 101개 등 878개 품목의 생산자 단계 가격을 조사해 매달 발표된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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