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복지법 밥값 적용 안돼
학교 급식비보다 3000원 적어
‘평등한 식판’ 법안 4년째 표류
한끼 식비 2,348원, 한달 의류ㆍ신발 구입비 등 2만2,370원. 다 합쳐 봐야 월 23만6,038원이다. 과연 18세 미만 영유아나 청소년 1명을 이 돈으로 키울 수 있겠는가. 정부는 그러라고 한다. 부모 없이 생활하는 아동양육시설(보육원) 아이들 얘기다.
17일 저녁 경북 영덕 K보육원 아이 39명이 식탁에 모였다. 메뉴는 잡곡밥, 돼지고기 김치찜, 동태포전, 김치, 귤. 아이들은 잔칫상이라도 받은 듯 연신 시시덕거리며 밥을 먹지만, 보육원 관계자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돼지고기, 배추, 귤은 후원을 받아 겨우 밥상에 올릴 수 있었다. 이 관계자는 “귤도 맘껏 까먹게 하고 유산균 음료라도 챙겨주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이 아이들은 2013년 4월부터 1년간 ‘3,500원짜리 밥상’을 받은 경험이 있다. 1,400원에 불과했던 시설아동들의 부실한 급식이 논란이 된 후, 아름다운재단이 ‘나는 아이들의 불평등한 식판에 반대합니다’ 캠페인에 나섰고 K보육원이 후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1년 후 아이들의 신체발달이 좋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후원사업이 끝나면서 보육원의 고민은 커졌다. 배불리 먹이던 아이들을 갑자기 부실하게 먹일 순 없으니 장을 볼 때마다 곤혹스럽다. 과거 3,500원짜리 밥상을 차릴 땐 국산 돼지고기를 구입했다면 지금은 수입산을 사고, 가끔 5개씩 나눠주던 딸기도 이제 2개 정도 먹인다. 유제품 간식도 줄였다. K보육원 원장은 “후원이나 민간단체의 지원사업에 기대 근근이 버티고 있다“며 “지원이 끊기면 막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3,500원이라는 숫자는 의미가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아동복지법에 따라 저소득층 아동들의 ‘최소 한 끼’로 권고한 값이다. 각 지자체는 지역아동센터를 찾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3,500~5,500원(인건비 포함)의 한 끼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시설 아이들은 아동복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돼 지원받는다. 지자체에 따라 1일 간식비를 지원해주는 곳도 있는데 편차가 있다. K보육원은 아동 1인당 하루 간식비 414원을 지급받는다. 이 돈을 쪼개서 급식비에 보탠다. 당연히 간식은 거의 줄 수 없다.
서울에서 지역아동센터를 함께 운영하는 한 보육원 관계자는 “아동복지법을 적용받는 지역아동센터는 5,000원, 보육원은 2,348원을 지원 받으니 인건비를 절약하는 셈 치고 두 곳의 밥을 함께 지어서 똑같이 먹이지만 간식까지 같이 먹이긴 힘들다”며 “시설에 있는 보육원 아이들은 센터 아이들이 간식을 먹는다는 사실조차 잘 몰라 속상하다”고 말했다. 경남의 A보육원은 자체적으로 밭에서 농작물을 재배해 부족한 식재료에 보태고 있다.
시설아동들의 한끼 식비는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초ㆍ중등학교 적정 무상급식비 단가로 제시한 것보다 많게는 3,000원 가량 적다. 시교육청은 올해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면서 초등학생의 경우 급식인원수에 따라 3,215~3,605원, 중학생은 4,515~5,300원을 적정단가로 제시했다. 보육원의 경우 급식인원이 적어 단가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격차는 더 크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시설아동들도 아동복지법에 따라 밥값을 주자는 취지의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향후 5년간 341억6,100만원, 연평균 68억3,200만원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비슷한 취지의 아동복지법 개정안은 2014년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폐기됐다. 4년째 표류 중인 셈이다. 이 의원은 “무상보육이나 양육수당 등 아이들을 지원하자는 정책은 많은데 양육시설 아이들의 경우 표를 줄 부모가 없다 보니 해당 법안에 관심이 적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동양육시설에 입소한 아동 수는 2015년말 현재 전국 268곳, 1만6,655명에 달한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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