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160원대로 급락 한국경제 부담
中, 美 국채 매도 등 대응 나설 것

“달러가 너무 강하다.”
‘환율전쟁’의 포문을 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이 말 한 마디에 18일 전 세계 금융 시장은 요동쳤다. 달러화 가치는 급락했고, 상대적으로 통화 가치가 오르며 비상이 걸린 각국은 곧 바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트럼프 취임을 계기로 국제 금융 시장이 ‘글로벌 통화 전쟁’에 돌입하는 것 아니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8원 내린 1,166.7원으로 마감했다. 원ㆍ달러 환율이 1,160원대로 내려온 건 작년 12월14일(1,169.7원) 이후 처음이다.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6.8525위안)도 전날보다 0.67% 떨어졌고, 엔ㆍ달러 환율(113.29엔)도 0.69% 하락해 연초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 앉았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평균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장중 100.26까지 추락하며 전날 대비 0.85% 떨어졌다.

달러화 가치를 끌어내린 것은 트럼프 당선인의 입이었다. 그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달러화 가치가 너무 높아 미국 기업이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는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약(弱)달러를 유인하기 위한 사실상의 구두개입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자국 통화의 가치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 언급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시장은 이를 미국 차기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취임을 앞두고 달러화의 방향성에 대해 직접 언급하면서 향후 중국 등과의 환율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시장의 우려를 증폭시켰다”고 밝혔다.
불문율을 깬 트럼프의 파격 발언은 사실상 ‘글로벌 환율전쟁’을 촉발했다. 더구나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이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탈퇴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도 나가는 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중국 등 미국의 무역적자가 큰 국가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입장도 강경하다.
중국을 비롯한 각국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달러 강세 효과를 누려왔던 주요 수출국들은 당장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서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중국도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환율 방어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박형중 대신증권 마켓전략실장은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위안화 절상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중국도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 국채 매도를 가속화하는 등 통화전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 틈바구니에서 원화 가치가 급등락하는 등 금융시장 변동성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이날 관계기관과 함께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대내ㆍ외 경제금융여건을 점검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 놓진 못했다.
국제 금융 시장은 계속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연초 이후 트럼프 취임에 대한 불안감은 시장의 변동성을 키워 왔다. 지난해 말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후 뉴욕증시에선 다우지수가 2만선에 육박하는 등 ‘트럼프 랠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엔 이 같은 추세가 급반전되면서 다시 충격을 주고 있다. 반면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국제 금 가격은 상승세로 돌아섰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환율전쟁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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