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에 최순실(61ㆍ구속 기소)씨에게 받은 도움 때문에 최씨를 ‘무한 신뢰’했으며, 대통령 뜻에 따라 국정 전반의 의사결정 절차에 최씨의 의견이 반영됐다는 진술이 나왔다.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18일 열린 정호성(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2회 공판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정 전 비서관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반자’라는 사실이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하나인 그의 입으로 확인된 셈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40년 지기’를 향한 신뢰 대목을 강조하면서 “정 전 비서관은 ‘최씨 의견을 들어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 초기 행정부 장ㆍ차관, 감사원장, 국가정보원장 등 고위직 인선자료 등의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했으며, 나머지 문건들도 포괄적인 박 대통령의 뜻이라 보고 보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정 전 비서관과 최씨 사이의 통화내역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가 국정 운영을 밀접하게 공유한 정황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검찰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2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22개월 동안 두 사람 사이 통화는 895차례, 문자메시지는 1,197건이나 됐다. 민간인인 최씨가 하루 2, 3차례 정 전 비서관과 연락하며 국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최씨에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한 이메일 계정으로 청와대 문건을 보낸 뒤 ‘보냈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내고, 최씨가 다시 이메일을 보낸 뒤 ‘보세요’라고 한 내용도 237회나 된다”고 밝혔다.
정 전 비서관 측은 18일 공판에서 박 대통령의 의견을 큰 틀에서 이해해 청와대 문건들을 최씨에게 보내고 정정하는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앞서 최씨는 지난 16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나와 “대통령 연설문의 표현 정도만 고쳤다”며 국정 개입 사실을 부인한 바 있다. 다만,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최씨 사이에서 이뤄진 이러한 ‘국정 협의’와 관련해 “대통령께서 최씨 의견을 들어서 반영할 부분은 하라고 한 건 맞는데 건마다 지시한 건 아니다”며 “대통령은 뭔가 더 잘해보려고, 저도 잘 보좌해보려던 건데 공모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픈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당초 정 전 비서관은 차기환 변호사를 추가 선임하며 지난 5일 공판에서 핵심 물증인 태블릿PC의 증거 능력을 문제삼고, 혐의 인정 여부조차 밝히지 않다가 이날 태도를 바꾼 것이다.
검찰은 또 대통령 연설문 등이 담긴 태블릿PC도 “최씨가 쓰던 게 맞다”며 정 전 비서관을 통한 청와대 문건 유출 증거로 들었다. 최씨가 2012년 7월과 2013년 7월 독일에 머물 때 태블릿이 사용됐다는 내용을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기기에 남아 있는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아내는 수사 기법)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 전 비서관이 “태블릿에 있던 문건은 최씨 말고는 보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덧붙였다. 헬스 트레이너 출신인 윤전추 행정관이 “최씨가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일정표를 보유한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내용도 공개됐다.
손현성 기자 hshs@h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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