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시기ㆍ배경 등 모두 달라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곤란
安ㆍ潘 10만부 넘는 책 있지만
‘정치인’보단 ‘롤모델’ 성격
대선 시즌을 맞아 출판계도 출렁댄다. 대선 시즌 필수코스가 ‘출판기념회’여서다. 폼도나고 자기 생각을 알리고 평가도 받고 소통하는데 책만한 매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선 출판 대리전’은 이미 시작됐다. 문재인 전 대표는 17일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대선도전을 공식화했다. 책을 낸 21세기북스 측은 “예약주문만도 3만부 넘게 몰리는 등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은 자신의 국제적 역할을 부각시킬 수 있는 회고록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이재명, 대한민국을 혁명하라’를 내놨다. 책을 낸 메디치미디어의 김장환 본부장은 “정책 그 자체에 대해서만 100% 자신의 손으로만 쓴 육필원고”라며 “그의 생각을 가장 압축적으로 제시한 책”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남경필 김부겸 안희정 등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정치인들도 이미 책을 냈거나 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들은 정말 인기가 있을까? 정치인들 책은 아무래도 대규모 구매가 많다. 열성 지지자, 혹은 정치적 바람에 민감한 이들이 수십에서 수백 권의 책을 한꺼번에 사서 주변에 나눠주는 방식이다. 이 같은 판매는 서점에서 잡히는 게 아니라 출판사와의 직거래할 경우가 많다. 출판계에선 이를 ‘B2B’거래라 부른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런 B2B까지 포함한 판매수치는 ‘그의 책이 돌풍이니 그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식으로, 대세론 바람몰이 장치로도 쓰인다.
이런 수요를 제외하고, 실제 일반 독자들은 누구 책을 얼마만큼이나 집어 들었을까. 그래서 교보문고 집계를 뽑았다. 이는 소비자들이 온ㆍ오프라인 교보문고 매장을 통해 실제 제 돈 내고 일부러 사서 본 수요다. B2B가 제외된 ‘B2C’ 집계다. 시장을 제대로 반영한 ‘잔인한 성적표’라 할 수 있다. 물론 출간시기나 배경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곤란한 측면이 있다.
출판성적표상 가장 화려한 후보는 역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다. ‘안철수’를 다루겠다며 출간된 책이 95종에 이를 뿐 아니라 판매량도 2012년 7월 대선을 앞두고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이 13만부로 모든 후보들 중 1위를 기록했다. IT업계에서 성공한, 모범적인 최고경영자(CEO)라는 자산을 가지고 신데렐라처럼 정계에 등장했다는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2004년, 2001년 각각 내놓은 ‘CEO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는 각각 4만,2000부, 2만2,000부를 기록했다.
그 다음은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다. 51종의 책이 쏟아졌고 10만부 이상 판매된 책이 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외화내빈’이다. 우선 51종의 책이 나왔지만 스스로 쓴 책은 없다. 안철수는 95종 가운데 자신이 직접 쓴 책이 14종에 이르는 것과 비교된다. 그리고 10만부 이상 팔린 1위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를 비롯, 2ㆍ3위를 각각 기록한 ‘반기문 총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세계를 가슴에 품어라’ 3권 모두가 아동 청소년물이다. 반기문이란 인물에 대한 진지한 탐구, 혹은 반기문을 통해서 내다본 한국의 비전에 대한 탐구라기보다 유엔 사무총장이란 직위에 따른 위인전 성격이 짙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정치인의 책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011년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담은 ‘문재인의 운명’은 3만4,500부가 나갔다. 지난 대선 전 쓴 ‘사람이 먼저다’, 대선 이후 쓴 ‘12 19 끝이 시작이다’가 3위, 2위를 각각 기록했다. 문 전 대표는 자신에 대한 22종의 책 가운데 11종을 썼다. 절반을 차지한 셈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안 전 대표, 반 전 총장의 책은 정치적 인물의 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롤모델’로 소비된 면이 크기 때문에 ‘정치인의 책’이라 말하긴 어렵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인권변호사, 시민단체 활동 시절부터 워낙 많이 읽고 많이 쓰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던 만큼 49종의 책 가운데 자신이 직접 쓴 책은 무려 40종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정치인 박원순’으로 각인될 만한 책을 상위권에 올려두진 못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내놓은 ‘강진일기’가 1,400부로 1위를 기록했다. 지난 대선 당시 모든 월급쟁이들의 심금을 울린 캐치프레이즈 제목으로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은 600부였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해 낸 ‘콜라보네이션’이 900부 판매기록으로 1위였다. 아직 6권의 책 밖에 없지만, 5권을 직접 썼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오직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가 500부를 기록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2000년에 낸 ‘재벌 과연 위기의 주범인가’ 가 50부를 기록했지만, 2002년 이전 집계는 디지털화가 이뤄지지 않은데다 2ㆍ3위권 책도 모두 그 이전이어서 판매부수 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교보문고 집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출판사가 밝힌 판매부수가 확 줄어든다는 점이다. ‘안철수의 생각’ ‘문재인의 운명’ 같은 책은 몇 십만 부가 나갔다는 게 출판사의 집계지만, 교보문고에서는 크게 줄어든다. 정치적 책에 대한 부담감, 정치인을 예쁘게 포장만 하려 드는 서술 방향 등이 독자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주요 후보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다는 것 자체는 공적 담론을 제공하는 책의 본래적 기능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많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위험부담을 낮추기 위해 두리뭉실한 말만 써놓다 보니 정작 그 책이 토론과 논쟁의 소재가 되지 못하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는 비판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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