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창비 ‘문학3’ 출범
종이잡지 발간, 문학웹진 창간
현장활동인 ‘문학몹’까지 결합
문인ㆍ일반 독자 함께 작품 읽고
토론한 내용 실어 차별화 꾀해
지난해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을 맞아 새 문예지 창간을 예고했던 출판사 창비가 종이잡지, 웹진, 현장활동을 결합한 문학 플랫폼 ‘문학3’을 출범했다. 1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카페창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정화 기획위원은 “문학이 어느 순간 독자 접근이 어려운 고상한 성벽이라는, 삶과 별개인 것 같다는 비난을 받았다”며 “쓰거나 읽는 자리가 고정되지 않고 독자가 작가, 작가가 독자가 되는 제3의 자리를 생각해 문학3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종이잡지 ‘문학3’을 연 3회 발간하고 문학웹진(www.munhak3.com)을 19일 창간한다. 여기에 현장 활동인 ‘문학몹’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기존 문예지 편집위원 제도 대신 기획위원제를 택해 독자편집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세 가지 문학 플랫폼에 반영한다. 시인 신용목, 소설가 최정화, 문학평론가 김미정ㆍ양경언이 위원을 맡는다.
창간호에 시, 소설을 주로 실은 건 기존 문예지와 다르지 않지만, 문인과 일반 독자를 초청해 잡지에 실린 작품을 읽고 토론한 내용을 실어 차별화를 꾀했다. ‘현장 에세이’와 사진, 만화 등으로 문학과 현실의 만남도 시도했다. 268쪽의 잡지 가격은 8,800원. 1년에 3권 발행되는 잡지를 정기 구독하면 2만1,000원이고, 같은 이름의 웹진을 받아볼 수 있다. 최정화 소설가는 “저희가 만드는 건 잡지가 아니다. ‘문학 플랫폼’이다”고 소개했다.
생산자에서 소비자 중심이 된 잡지
‘문학3’은 최근 문예지의 변화 흐름을 반영한다. 2015년 여름 창간한 ‘악스트’(은행나무)를 시작으로 잇따라 선을 보인 ‘릿터’(민음사), ‘미스테리아’(문학동네)는 패션잡지처럼 화려한 디자인과 권위를 벗은 말랑말랑한 기고, 팬심으로 가득한 인터뷰로 ‘평범한 독자’에게 다가서려 하고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공급자 중심의 문예지가 독자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이룬 것”이라며 “문예지가 1970년대에는 전문가 담론장, 1990년대에는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교양으로 작용했다면 이제는 문학 소비자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라고 평했다. 기존 문예지 발행 목적이 신작 확보와 비평권력 즉, 문학 헤게모니 주도권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면 최근 발행한 ‘젊은 문예지’는 문학 소비자에게 포커스를 맞춰 ‘읽히는’ 잡지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2015년 6,7월에 각각 창간한 ‘미스테리아’와 ‘악스트’가 문예지 ‘혁신’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미스테리아’를 발행하는 에릭시르의 임지호 편집장은 “(경영난으로)폐간한 ‘판타스틱’은 장르문학 전반을 다룬 데 반해 ‘미스테리아’는 장르문학 중에서도 미스터리 소설에만 포커스를 두었다”며 “창간 당시 목표치 2,000부를 넘어 매호 3,000부를 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와 평론 없이 소설과 에세이만 실은 ‘악스트’는 2,900원의 파격적인 판매 가격으로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창간 후 매 호 1만~7,000부가 팔릴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탈권위적·독자중심적인 발상”
지난해 8월 창간한 ‘릿터’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을 인터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미스테리아’와 ‘악스트’가 텍스트로만 승부하는데 반해 ‘릿터’는 온ㆍ오프라인 모임으로 독자와 적극 소통하고 이를 잡지에 반영하고 있다. 창간 4달 만에 정기구독자 수 1,000명을 넘었다. 서효인 민음사 문학팀장은 “온라인 유료 독서모임 ‘트레바리’에 독자들이 ‘릿터 클럽’을 만들어서 감상평도 나누고 한 달에 두 번씩 오프라인 모임을 연다. 저도 참가해 4시간 정도 ‘강한 피드백’을 받고 의견을 잡지에 반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소설과 에세이 등 분야별 필자 2명씩을 초대해 ‘독자와의 만남’ 행사도 열었다.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전통 문예지의 위기와 몰락은 한국사회 전반은커녕 문단, 그것도 협소한 ‘끼리끼리 문화’에 함몰돼 문학의 전반적 현실조차 대변하지 못하고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공공성의 쇠퇴, 대의의 추락에서 기인한다”며 “탈권위적이고 독자중심적인 발상, 학계와 출판자본이 결합된 독특한 문단시스템에서 벗어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일단 환영할만하다”고 평가했다. 함 평론가는 “대형 문학 출판사들의 새 잡지들이 무늬만 바꾸는 게 아니라 유연한 구조, 시대정신을 발휘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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