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65) 특별검사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수사가 박근혜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다. 17일 블랙리스트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지만 이들의 윗선인 박 대통령도 블랙리스트 작성 등에 관여한 정황이 다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은 이날 “이 문제로 더 소환할 사람은 없다”며 “(블랙리스트 작성에)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황이나 물증이 있는지 계속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배후에서 블랙리스트 작성 및 유지ㆍ관리를 지시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김 전 실장은 비서실장 재직 중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에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의혹을, 조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할 때 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만여명에 달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만들고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로 전달됐다.
특검팀은 지난 12일 리스트 작성 등에 관여한 혐의로 김종덕(60)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56)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구속하고, 송광용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문체부 유동훈 2차관과 송수근 1차관, 모철민 주프랑스 대사(전 교문수석) 등 청와대와 문체부 핵심 관계자들을 조사했다. 이들의 진술과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증거 자료들은 현재까지는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가리키고 있지만 특검팀은 대통령 관여 여부를 살피고 있다. 야당의 대선 후보, 지역자치단체장 후보를 지지했거나 정부 시책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과 단체 등에 지원을 배제한 범행을 대통령 참모인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단독 결정으로 이뤄질 수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관여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정호성(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폰 녹음파일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 대통합과 관련해 “종북 세력까지 그건 아니거든요. 빨갱이까지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세월호 7시간’ 의혹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등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시민과 단체들을 종북 세력으로 몰고 있는 것에 비춰 보면 박 대통령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진보 인사ㆍ단체 등에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이 2014년 11월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불러 들여 “CJ가 좌파 성향을 보인다. CJ가 영화를 잘 만드는데, 방향을 바꾼다면 나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압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창비’ ‘문학동네’ 등 출판사들을 좌파 출판사로 언급하며 지원 예산 삭감을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면 특검이 징벌 의지를 표하며 밝힌 대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