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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수사 정점은 김기춘인가, 박 대통령인가

입력
2017.01.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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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수사가 박근혜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다. 17일 블랙리스트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지만 이들의 윗선인 박 대통령도 블랙리스트 작성 등에 관여한 정황이 다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은 이날 “이 문제로 더 소환할 사람은 없다”며 “(블랙리스트 작성에)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황이나 물증이 있는지 계속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배후에서 블랙리스트 작성 및 유지ㆍ관리를 지시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김 전 실장은 비서실장 재직 중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에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의혹을, 조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할 때 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만여명에 달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만들고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로 전달됐다.

특검팀은 지난 12일 리스트 작성 등에 관여한 혐의로 김종덕(60)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56)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구속하고, 송광용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문체부 유동훈 2차관과 송수근 1차관, 모철민 주프랑스 대사(전 교문수석) 등 청와대와 문체부 핵심 관계자들을 조사했다. 이들의 진술과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증거 자료들은 현재까지는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가리키고 있지만 특검팀은 대통령 관여 여부를 살피고 있다. 야당의 대선 후보, 지역자치단체장 후보를 지지했거나 정부 시책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과 단체 등에 지원을 배제한 범행을 대통령 참모인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단독 결정으로 이뤄질 수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관여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정호성(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폰 녹음파일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 대통합과 관련해 “종북 세력까지 그건 아니거든요. 빨갱이까지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세월호 7시간’ 의혹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등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시민과 단체들을 종북 세력으로 몰고 있는 것에 비춰 보면 박 대통령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진보 인사ㆍ단체 등에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이 2014년 11월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불러 들여 “CJ가 좌파 성향을 보인다. CJ가 영화를 잘 만드는데, 방향을 바꾼다면 나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압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창비’ ‘문학동네’ 등 출판사들을 좌파 출판사로 언급하며 지원 예산 삭감을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면 특검이 징벌 의지를 표하며 밝힌 대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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