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교사’로 연기 변신
개봉 전부터 性이 화제로 부각
“노출보다 감정에 집중했어요”
영화 ‘여교사’는 제목만으로 ‘문제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노골적으로 성을 앞세운 마케팅이 눈총을 받았고, 여성혐오 정서를 자극하며 성차별적 시각을 부추긴다는 오해도 샀다. ‘여교사’는 그렇게 개봉 전부터 이슈 메이커가 됐다. 교사와 학생의 부적절한 관계를 담은 선정적 내용과 출연 배우들의 노출 수위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도 컸다. 배우 김하늘(39)이 출연했다는 점이 호기심을 더욱 부풀렸다. 제목과 달리 영화는 묘한 상상력을 부를 만하지 않다. 사제간의 밀애 대신 계약직 교사 효주(김하늘)와 정교사로 부임한 학교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 사이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이 스크린을 채운다.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김하늘은 “제목만 보고 영화가 야하게 보여지는 게 정말 싫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짧고 명료하게 “노출을 원치 않았다”고 덧붙였다. 노출보다는 효주의 감정에 깊이 이입돼 ‘여교사’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 홍보가 그런 쪽(성적)으로 부각이 돼서 나가는 게 싫었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흙수저’ 효주가 느꼈을 모멸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연기생활 20년 동안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영화 속 효주는 “정교사가 될 때까지 결혼할 생각들 하지마. 철 없는 짓이야”라는 교감선생님의 ‘도돌이표 노래’에 울상이 되고, “정교사를 시킬 수는 없잖아”라며 동료 교사가 내민 산더미 같은 시험지를 채점해야 한다. 꾸중 듣던 학생에게조차 “계약직인 주제에!”라는 조롱에 눈시울을 붉힌다. 대낮에 학생들이 내다보는 운동장에서 혜영에게 무릎 꿇고 비는 장면도 있다. 김하늘은 “노출보다는 감정 연기에 집중하고 싶어” 김태용 감독과 시나리오 한 장 한 장, 매 장면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 대본을 써내려 가듯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려 했다.
효주가 자신이 임시 담임선생으로 있는 반 학생 재하(이원근)를 집으로 데려와 첫날밤을 지내는 장면에선 노출 수위가 높은 연기를 해야 했으나 감정 표출을 자제했다. 김하늘은 “(대본에는)상당히 구체적으로 효주와 재하의 행동이 기술됐다”며 “이미 감정적으로 피폐한 효주를 그런(야한)쪽으로 표현하면 과하게 보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하늘은 ‘여교사’에서 무미건조한 효주의 일상을 튀지 않게 그려낸다. 혜영과 제하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하고도 표정에 변화가 없고, 얹혀살던 남자친구가 떠났다가 돌아올 때도 감정의 동요가 없다. 늘 발랄한 연기로 작품에 싱그러운 생기를 불어넣었던 그였기에 낯설기만 하다. 김하늘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고는 ‘어떻게 나를 떠올릴 수 있지?’하고 궁금해 했다. 김 감독을 만나자마자 “왜 이 대본을 저한테 주셨어요?”하고 다짜고짜 물었단다. 김 감독은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를 보고” 인상 깊었다는 의외의 답을 했다. 김하늘에게 “효주가 가진 우울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발견”했다고 한다. 김하늘은 “무표정한 효주는 나 역시 낯선 모습”이라며 “김 감독님이 기존에 보지 못한 내 표정을 잡아내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데뷔한지 21년. 세상도 김하늘의 생각도 바꾸었다. 그는 “나이도 들고 결혼도 하고, 점점 성격이나 연기의 색깔이 변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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