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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 콜롬비아

입력
2017.01.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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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17

시몬 볼리바르의 그란콜롬비아가 1819년 오늘 탄생했다.
시몬 볼리바르의 그란콜롬비아가 1819년 오늘 탄생했다.

남미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콜롬비아연방공화국 ‘그란(랑) 콜롬비아 Gran Colombia’가 1819년 1월 17일 건국했다. 국토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전체와 코스타리카 페루 브라질 가이아나 일부였고, 수도는 보고타였다.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로,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한 종신직이었다. 초대 대통령은 당연히, 독립 혁명전쟁을 이끌며 저 거대한 영토를 한 데 모은 시몬 볼리바르였다, 남미 민족ㆍ분리주의자들은 채 덜 끝난 독립전쟁을 위해 강력한 통일 국가와 볼리바르의 카리스마를 원했다.

스페인 식민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1783년 태어난 볼리바르는 부모의 유산과 친지의 보살핌 덕에 본국 귀족 수준의 좋은 교육을 받으며 식민지 엘리트로 성장했다. 프랑스대혁명 영향으로 진보 자유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던 여러 걸출한 지식인 독립운동가들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인이 된 뒤 혼자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며 또 다양한 지식인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남미 현실과의 대비 속에 나폴레옹 절대권력에 대한 저항의식과 미 연방국가의 가능성을 살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남미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외사촌 마리아 테레사와의 짧은 신혼 끝에 사별한 직후인 1807년, 24세 때였다.

그가 빼어난 전투 지휘관이었는지를 두고는 설이 엇갈린다. 그는 남미 여러 나라에서 숱한 전투를 치러 숱하게 승리했고, 괴멸적 패배를 겪기도 했다. 토착 군벌들의 지원을 받고 기사회생한 적이 적지 않았고, 스페인을 견제하기 위한 후발 제국주의국가들의 원조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일 국가 단위의 독립군이 아닌 남미 전역의 해방군 지휘자로 자신의 입지와 이미지를 굳혔다. 1819년 콜롬비아 해방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그는 잇달아 남미의 여러 나라를 독립시켰다.

그의 그란콜롬비아는 하지만, 독립 후 분리주의자들과의 알력과 내분으로 단명했다. 그는 1830년 대통령 직을 사임했고, 그란콜롬비아는 이후 약 1년 동안 4명의 임시ㆍ정식 국가수반이 교체되는 혼란 끝에 31년 12월 소멸, 개별 국가로 해체됐다. 볼리바르는 1830년 12월 17일 별세했다. 향년 47세. 그의 좌절된 이상은 남미인들의 아득한 염원으로 남아 20세기의 험한 수탈의 현실에 저항하며 연대하는 거멀못이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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