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올스톱 위기에
경영 공백 속 집단지도 체제 전망
지배구조 개편 등 줄줄이 중단
기업 신인도 하락 등 대외 리스크
美, 해외부패방지법 적용 가능성
삼성發 악재에 국내 증시도 휘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로 삼성이 칼 끝에 섰다. 2년 8개월 전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를 압도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삼성은 경영 공백은 물론 도덕성에 큰 흠집이 가면서 그간 쌓은 글로벌 가치도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6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법원에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삼성은 순식간에 초상집이 됐다.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특검을 주시한 삼성 미래전략실 등 핵심 부서에선 허탈한 한숨만 쏟아졌다.
총수에 대한 구속영장은 숱한 위기를 관통한 삼성으로서도 처음 직면한 사태다. 이 회장은 1996년과 2009년 비자금 사건으로 두 차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선 지 3년도 안돼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경영권 공격,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갤럭시노트7 단종 등 잇단 고비를 맞은 데 이어 삼성 총수 중 처음으로 구속영장 청구라는 불명예까지 지게 됐다. 영장이 발부되면 삼성 총수로서는 최초의 인신 구속으로 기록된다.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삼성은 사내 법무팀과 외부 법무법인까지 동원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총력 대응할 방침이다. 그래도 ‘방향타’ 상실이란 시나리오를 받아 들면 삼성은 비상경영체제 전환이 불가피해진다. 그룹 2인자이자 미래전략실장인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은 구속을 면했지만 수사를 받는 처지라 경영 전면에 나서기는 어렵다. 결국 각 계열사 수장을 중심으로 집단지도 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인 김종중 사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등이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상 유지 수준이지 경영공백이 예상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오는 6월까지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 지난달 초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이 약속한 미래전략실 해체 등도 중단될 상황이다. 사장단 인사와 계열사 조직 개편, 국내외 인수합병(M&A)과 신사업 발굴 등 장기적 투자, 고용 확대 등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된다.
총수 사법처리가 불러올 대외적 리스크도 치명적이다. 당장 기업신인도 하락은 물론이고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가 확정되면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 등 강도 높은 외국의 제재가 몰아칠 수 있다. FCPA는 미국 이외 국가에서 뇌물 제공으로 적발돼도 사업 제한과 함께 거액의 벌금을 물린다. 아직 FCPA로 처벌받은 국내 기업은 없지만 이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삼성전자 등기이사가 됐고, 삼성전자는 미국법인은 운영 중이라 돼 첫 적용 사례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해 9조4,000억원에 결정한 하만 인수도 최근 헐값 매각을 주장하는 하만 소액주주들의 집단소송에 이어 더 큰 암초를 만나게 될 우려도 있다. 삼성 관계자는 “미국에서 FCPA로 인한 영향을 받겠지만 복잡한 사안이라 금액으로 추산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에 대한 해외의 관심을 증명하듯 미국 CNN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 영국 BBC, 일본 교도통신 등 각국 주요 외신들은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를 긴급기사로 자국에 전송했다. WSJ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 기업의 리더가 한국의 부패 스캔들에 걸려들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삼성은 발화 위험이 있는 갤럭시노트7 이후 수개월 만에 두 번째 위기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재계 1위 삼성의 위기에 증시도 휘청거렸다. 최근 2,100선을 넘봤던 코스피는 장중 2,050까지 내려갔고, 주당 200만원을 향해 기세를 높였던 삼성전자 주식은 전일 대비 2.14% 하락한 183만3,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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