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7명 “유보 또는 회의적”
문재인과 대립구도 만들기 성공적
도덕성 검증이 ‘최대 암초’ 평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으로 형성된 ‘반풍’은 태풍의 눈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다만 대다수 정치 전문가들은 반 전 총장이 ‘정치 개혁’과 ‘대통합’의 슬로건을 들고 나와 프레임 구도를 고정시키는 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가 15일 정치학 교수와 여론조사 전문가 10명을 상대로 실시한 반 전 총장의 파괴력과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7명은 부정적으로 전망하거나 판단을 유보했다.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고 응답한 3명도 정책 대안 제시나 주자 간 합종연횡 등을 변수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이 반 전 총장의 파괴력을 다소 유보적으로 보는 건 ‘보수의 분열’이라는 상황 요인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연루로 헌법재판소에선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고 이로 인해 여권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리는 초유의 보수당 분당 사태까지 일어났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진영표가 일단 단단해야 인물표가 더해져 시너지가 생기면서 파괴력이 커진다”며 “지금처럼 보수의 표밭이 분산되면 어떤 후보가 나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범보수로 분류되는 반 전 총장이 보수의 진지에 쐐기를 박지 않는 것도 요인으로 지적됐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반 전 총장은 아직까지 보수를 결집해낼 명분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어차피 보수는 문재인을 찍지 않을 테니 나로 결집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이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걸 두고도 “중도 후보라는 전략적 스탠스가 먹힐지 의문”이라며 “정통 보수진영에게도 견제 받고 야권 지지층에도 호소력이 없는 구호에 그칠 수 있다”(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는 진단도 있었다.
귀국 후 행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대통합에 한 몸 불사르겠다”, “저의 진정성, 명예, 유엔의 이상까지 짓밟는 행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젊은이들의 길잡이가 되겠다” 등의 단호한 어법이 외교관 이미지를 다소 불식시켰다는 평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의 국가대개조, 정권교체에 맞서 국가대통합, 정치교체를 내세우며 대립축을 만들어 가고 있다”며 “나아가 호헌이냐 개헌이냐를 두고도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선거제도, 정책결정 방식, 국민과 정치인들의 행태, 사고방식을 전반적으로 손봐야만 한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안을 내놓겠다”고 개헌론에 공식 동참했다.
전문가들은 반 전 총장의 단호한 어법을 신념이 분명한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전환하려는 포석으로 읽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귀국 전과 비교해 메시지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바뀌어 준비된 행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홍 소장은 “말투나 단어에서 강한 권력 의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 같다”, 이상일 아젠다넷 대표는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이 가능할지 관심이었는데, 귀국 메시지를 보고 확실해졌다”고 평가했다.
반 전 총장의 아킬레스 건으로는 도덕성 검증이 집중 거론됐다. “반 전 총장 본인 책임이 아니라 하더라도 주변의 호가호위가 있었다는 증거다”(정 교수), “검증의 스모킹 건(결정적 단서)이 될 수 있다”(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것이다.
조기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대선에선 3자구도가 되리란 전망이 다수였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당분간은 반 전 총장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더해 현재 지지율은 낮지만 잠재력이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까지 3자구도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헌재의 탄핵 인용 여부, 개헌 등이 고리가 돼 언제든 후보간 연대가 가능해 현재로선 최종 구도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