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강해진 中 견제 위해 러와 손잡기
양국 역학관계 냉전 때의 정반대 상황
미국 ‘국익 최우선’ 외교 코드도 일치해
작년 6월부터 조언 시작 인사에도 영향력
헨리 키신저(왼쪽) 전 미국 국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냉전 시대를 주도했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다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외교정책의 새로운 틀을 짜는 설계자로 등장했다.

트럼프 당선인과 키신저 전 장관의 본격적 인연은 지난해 6월 시작됐다. 당시 트럼프 후보는 뉴욕에서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 외교 조언을 들은 뒤 ‘친 러시아’ 정책을 핵심 외교정책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호감을 표시했지만, 키신저 전 장관의 훈수를 들은 뒤 외교ㆍ안보분야 참모를 렉스 틸러슨(국무장관 지명자), 마이클 플린(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등 ‘친러ㆍ반중’성향 인사로 채우기 시작했다. 키신저 전 장관도 지난해 말 많은 우려가 쏟아진 트럼프 당선인의 틸러슨 국무장관 낙점에 대해, “훌륭한 선택”이라고 화답했다.

망백(望百)을 훌쩍 넘긴 94세의 키신저 전 장관이 트럼프 당선인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의 ‘외교 코드’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국정 전반을 일종의 협상으로 판단하는 트럼프는 외교관계도 국익에 따라 수시로 변해야 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이는 1970년대 초반 핑퐁외교를 앞세워 ‘죽의 장막’을 열어젖힌 키신저 전 장관의 ‘실용주의적’ 외교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키신저 전 장관은 ▦소련과의 군축협정 체결 ▦칠레 피노체트 반군지원 ▦방글라데시 극우 군사정권 인정 ▦동티모르 학살 묵인 등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며 철저히 국익 중시 정책을 폈다. 트럼프 당선인이 한때 테러용의자에 대한 물고문 허용, 무슬림 입국금지 등을 ‘미국 우선주의’일환으로 주장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키신저 구상을 채택한 가장 큰 이유는 지난 40여년간 구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와 중국의 역학관계가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과 1, 2위를 다툴 정도로 중국이 급성장했지만, 러시아는 경제규모가 미국의 5분의 1 수준으로 강력한 군사력 대비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냉전 시대 초강대국 지위를 놓고 경쟁하던 소련을 견제하려고 한 수 아래 중국과 손을 잡았다면, 지금은 미국과 동등한 ‘신형 대국관계’를 주장하는 중국의 힘을 빼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인 셈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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