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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 "아직도 제가 '멜로 킹'으로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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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 "아직도 제가 '멜로 킹'으로 보이시나요"

입력
2017.01.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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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은 “고난도 액션 연기에 도전하는데 있어서 그래도 해병대 경험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재명 인턴기자
현빈은 “고난도 액션 연기에 도전하는데 있어서 그래도 해병대 경험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재명 인턴기자

안개가 자욱한 시애틀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인과 사무치듯 진한 키스를 나누고(‘만추’), 옥탑방에 사는 사랑하는 여인을 먼 발치에서 그윽하게 바라보던(‘시크릿 가든’) 남자. 배우 현빈(35)이 그려온 세상은 사랑이 충만한 판타지 그 자체였다. 영화 ‘공조’(18일 개봉)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랑이라는 수식이 그의 이미지를 한정 지었다.

오로지 한 여인만을 바라보며 보조개 미소로 응답할 것 같은 그가 이번엔 180도 달라졌다.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0)에서 무술감독을 꿈꾸던 스턴트맨 길라임(하지원)이 보여줬던 고난도 액션을 그가 이어받았다.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현빈에게 넌지시 “하지원씨의 (액션)코치도 있었느냐”고 물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그런 얘긴 안 했다. 다만 그 일(박근혜 대통령의 길라임 가명 사용 논란)이 있은 후 문자를 주고 받긴 했다”고 웃으며 답했다.

달콤한 로맨스를 속삭이는 남자로 현빈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공조’는 하나의 충격이다. 그는 고가도로와 고층 건물에서 맨 몸으로 뛰어 내리는 건 예사고, 물에 적신 두루마리 휴지를 무기 삼아 맨손 격투를 펼치기도 한다. 대낮 터널 안에서 벌어지는 차량 액션과 총격 장면에선 입이 벌어질 정도다. 특수부대 출신 북한 경찰 림철령이라는 옷은 그에게 딱 맞는 맞춤 옷으로 보인다. 그는 비밀리에 제작된 위조 지폐 동판을 빼돌린 북한의 범죄조직 리더 차기성(김주혁)을 잡기 위해 남한으로 온 림철령 역할을 소화하며 그 동안 감춰왔던 액션 본능을 유감 없이 선보인다.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의 현빈은 차량 추격에서 총격까지 이어지는 고난도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의 현빈은 차량 추격에서 총격까지 이어지는 고난도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현빈은 “말보다 행동을 먼저 하는 캐릭터”라 몸의 움직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그는 ‘공조’ 출연을 확정 짓자 마자 제작진에 3가지를 주문했다. “액션팀을 빨리 만나게 해달라” “운동을 시작하겠다” “북한말 배우겠다”… 현빈은 영화 ‘추격자’(2008)와 ‘용의자’(2013)의 액션을 담당했던 오세영 무술감독과 함께 “눈 뜨면 운동”을 하며 3~4개월을 한 몸처럼 지냈다. 북한이 자체 개발한 주체격술과 러시아의 특공무술 시스테마를 기반으로 무술을 익혔다. 그의 노력은 간결하면서도 절도 있는 몸동작으로 스크린에 표출된다. 자동차 유리를 깨고 차에 매달려 달리거나 자신에게 겨눠진 총을 순식간에 분리해내는 고난도 액션이 펼쳐진다. ‘멜로킹’이라는 별명이 무색하다.

“참 이상한 게 제 출연작들의 면면을 보면 (사랑에 빠지는)재벌 역할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희한하게도 대중에게 사랑 받았던 작품들이 멜로 장르였던 거죠. 정신병자(‘나는 행복합니다’), 조직폭력배(‘친구, 우리들의 전설’), 방송사 PD(‘그들이 사는 세상’) 등 다양하게 연기를 했는데도 말이죠.”

현빈은 ‘공조’를 위해 외모부터 확 바꿨다. 남한 형사 강진태 역의 유해진이 소탈하고 능청스런 연기로 코믹을 담당한다면, 현빈은 웃음기를 제거한 냉혈한 형사로 보여야 했다. 수염을 길러 강한 인상을 주고, 운동으로 상체 근육을 키워 “어느 옷을 입어도 몸이 단단해 보이도록 준비”했다. 그는 ‘007’ 시리즈의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멋진 수트 맵시를 뽐낸다.

/그림 3 현빈은 ‘공조’에서 물에 적신 휴지를 무기 삼아 여러 명을 제압하는 무술연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현빈이 북한군 출신으로 등장하는 배우 공정환과 펼치는 “관절 액션” 연기는 특히 일품이다. 관절을 활용해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기술은 ‘공조’를 홍콩영화인지 한국영화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정교하고도 눈부시다. 롱 테이크로 끊김 없이 한 번에 이어지는 이 액션 장면에 많은 관객들이 탄성을 지르게 될 듯하다.

남자배우들의 호흡을 앞세운 ‘브로맨스’ 영화가 그렇듯 ‘공조’ 역시 림철령과 강진태의 갈등과 우정을 바탕으로 플롯을 만들었다. 송강호 강동원 주연의 영화 ‘의형제’(2010)나 안성기 박중훈의 영화 ‘투캅스’(1993) 등을 떠오르게 한다. 현빈은 “감정을 실은 ‘감성 액션’으로 차별화를 꾀했다”고 말했다. 상대에 따라 감정의 깊이가 다르듯 표정이나 힘의 강도를 조절해 액션 연기를 했다는 얘기다. 현빈의 변신이 워낙 완벽하기에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빈은 ‘시크릿 가든’과 ‘내 이름은 김삼순’ 등 드라마로 30~50%의 시청률을 맛보며 특급 스타 대우를 받았지만 스크린에선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흥행작이라고 내세울 만한 영화가 딱히 없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봉한 ‘역린’은 제작비 120억원을 들인 영화로서는 실망스러운 흥행 수치인 400만 관객을 기록했다. “당시 영화관에 관객들의 발길이 끊겼을 정도였고, 크게 잡혀 있던 행사도 모두 취소”될 정도로 외부 변수에 무릎을 꿇었다. ‘공조’도 운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극장 밖이 어수선해서다. “제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오락적이고 상업적인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조금은 기대를 걸고 있어요.”

촬영 중인 영화 ‘꾼’도 상업영화다. 현빈이 달라진 걸까. 그는 “20때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며 “요즘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대중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에 더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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