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조삼모사 뒤집어 보기

입력
2017.01.15 09:36
0 0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 출전은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 아래가 그 전문(全文)이다.

저공(狙公)이 도토리를 원숭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래서 다시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하였다고 한다. 하루에 일곱 개라는 명(名)과 실(實)이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작용하였던 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절대의 시(是)를 따라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시비를 조화해서 천균(天均)에서 편안히 쉰다. 이것을 일컬어 양행(兩行)이라 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래 조삼모사는 4:3으로 나누든 3:4로 나누든 ‘7’이라는 실질은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그 외형에 현혹되어 판단력을 흐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조금 비틀어 본다. 아래 이야기는 나의 상상력이 곁들여진 것이다.

저공은 자신이 키우는 원숭이들에게 하루 8개씩의 도토리를 나눠주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져 도토리 조달에 어려움을 느낀 저공. 이를 지켜보던 하인이 저공에게 말한다.

“주인님. 도토리 양이 부족하니 이번에 원숭이 열 마리 정도 팔아버리죠.”

하지만 저공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어린 녀석들이야. 지금 팔아버리면 유랑극단에 팔려가거나 좋지 않은 환경에서 죽고말거야. 우리처럼 이렇게 돌봐주지 못한다구. 차라리 도토리 1개를 줄여서 7개씩 주더라도 같이 데리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렇게 해보세.”

하인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도토리를 나눠주죠?”

“음… 8개를 줄 때는 아침에 4개, 저녁에 4개씩 줬는데, 7개를 주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3개, 4개’로 해야 하나 아님 ‘4개, 3개’로 해야 하나?”

“그냥 주인님이 정해서 주시면 되죠. 안 팔아 버리고 데리고 가는 것 만해도 감지덕지 해야 할 판인데…”

“아닐세. 원숭이들을 좀 모아주게.”

하인은 저공이 괜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원숭이들을 모았다. 원숭이들도 얼마 전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있었다. 몇몇 원숭이들은 “주인 영감이 우리 중 몇 마리를 팔아버리는 거 아냐?”라며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저공은 어려워진 형편을 솔직히 얘기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가족 같은 원숭이들을 팔고 싶지 않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방법은 배급되는 도토리를 줄이는 것뿐이데, 7개를 배분할 때 아침에 3개주고 저녁에 4개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원숭이 대표가 말했다.

“영감님. 솔직히 저희들은 낮에 활동을 많이 하니 아침을 많이 먹는 것이 좋습니다. 아침에 적게 먹으면 하루 종일 배가 고파 힘듭니다. 차라리 저녁에 적게 먹는 게 좋겠습니다.”

“아, 그래? 난 너희들이 저녁에 많이 먹고 배부른 채 편안히 잠드는 것을 좋아할 줄 알았지.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군. 알겠네. 그럼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로 나눠주지. 괜찮겠나?”

“네! 저희들은 불만 없습니다.”

다소 변형된 조삼모사 이야기에서의 주인공은 저공(狙公)이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원숭이 몇 마리를 팔아버리는 손쉬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모든 원숭이를 같이 데리고 가려 한 그의 행위는 인(仁)과 의(義)에 가깝고, 자신이 독단적으로 분배방식을 결정할 수 있음에도 사정을 설명하고 원숭이들의 의견까지 진지하게 물어본 그의 행위는 지(智)와 예(禮)라 할 수 있으며, 원숭이들의 사정을 청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불만을 최소화하려 노력한 것은 신(信)과 통(通)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당연한 듯 명예퇴직을 강요하는 세태를 살다 보니 어떻게든 원숭이들과 소통하려 했던 저공 영감의 세심한 마음씀씀이가 절대 가벼이 보이지 않는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