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떠셨어요?” “여자분들도 볼 만 하던가요?” 기자보다 먼저 질문을 쏟아냈다. 9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해서 그런 것일까.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조인성(36)은 전날 열린 영화 ‘더 킹’(18일 개봉)의 언론시사회 반응에 궁금증을 드러냈다. 영화 ‘쌍화점’(2008) 이후 군입대를 하면서 충무로와 멀어졌던 그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멜로물을 많이 해서 관객들이 저를 보고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라던 조인성은 “막 이상하지는 않았죠? 너무 남자들의 얘긴가요?”라며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더 킹’은 대한민국 권력자들의 부조리와 권력에 대한 욕망, 정치 싸움 등 남자들의 약육강식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한 영화다. 조인성은 공부와는 담쌓고 싸움질만 하는 고등학생이었다가 서울대에 입학한 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까지 되는 신통한 인물 박태수를 연기한다. 영화는 박태수를 통해 한국사회의 부정부패를 짚어내고 조인성은 변화무쌍한 연기로 영화의 질감을 전한다.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굴곡진 삶을 촘촘하게 연기하고, 영화를 이끄는 화자로서 내레이션까지 담당했다.
자랑할 만한 활약인데 조인성은 “주인공치고는 너무 많이 나왔다” “내레이션도 많아 죄송하다”며 얼굴을 붉혔다. 9년 만에 대형 스크린에 비친 모습이 “좋기도 하지만 어색하기도”하다며 민망해했다. ‘왜 그렇게 오래 쉬었나?’라고 물으니 “딱 (마음에)걸리는 작품을 기다리다”가 시간이 길어졌단다.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건 “배우의 특권”이라고도 했다. “배우를 쉴 때 ‘인간 조인성’으로도 바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운동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야 해요. 연예계 선후배들도 챙겨야 하고 나름 바쁘게 생활합니다(웃음). 가끔 예능프로그램도 출연하고요. 생계요? 다행히 지난 10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서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조금 생겼죠.”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조인성은 쉬는 동안 매일 동료나 친구들을 만나 지루하지 않았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하고 술자리를 갖는 게 그가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었다. 조인성의 친화력은 ‘더 킹’의 촬영 현장에서도 빛났다. 부산에서 촬영 분량이 많았던 그는 먼저 서울로 가려는 선배 배성우에게 “어딜 가요?” “진짜 가려고?”라며 자동차를 두 팔로 막아서며 놀리기도 하고, 밤 늦은 촬영 때 정우성과 통화하며 “형 자게요? 잔다고요? 에이 거짓말”이라고 애교 섞인 투정도 부렸다고 한다. 이런 그의 인성은 배우들간의 원활한 협업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작품 속 캐릭터를 혼자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러한 인간관계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가족처럼.”
영화는 134분이라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조인성 정우성 배성우 세 배우의 찰떡호흡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검사장 후보 한강식(정우성)과 그 앞에 순종적인 행동대장 검사 양동철(배성우) 그리고 권력을 쥐고 싶어하는 박태수가 그리는 비열한 세상이 완벽하다 싶게 스크린에 펼쳐진다. 조인성에게 이런 호흡은 “술자리”에서 나온다고. 그는 주량이 “소주 한 병 반”이라며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들어가려는 배우들과 스태프를 못 가게 잡고는 했다고 말했다. “어딜 들어가, 한 잔 해야지”라고 붙잡으며 맥주 한 잔이라도 꼭 마셨다. “아침에 우성이 형이 전화가 걸려와 ‘어디야?’하면 그의 집으로 가서 아침밥도 먹고요. 그렇게 셋이 항상 붙어 다닌 것 같아요.”
세 사람의 조합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자칫 우스꽝스럽게 그려질 수 있는 장면들이 오히려 부패한 검사들의 민낯으로 표현됐다. 대통령 당선자를 맞추려고 굿판을 벌이거나, 군사보호시설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고급 호텔에서 파티를 벌이는 장면들이 그랬다. 여기에 1980년대 군사독재시절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통령들의 얼굴과 사건사고 현장들이 끼어들며 영화는 비판의 날을 벼리게 된다. 국회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는 모습을 보며 활짝 웃고 있는 당시 박근혜 의원의 모습이 단순한 자료화면으로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리며 울림이 커진다. 조인성은 “요즘 시국이 민주주의를 배우는 하나의 체험이 됐다”며 “예전에 적극적이지 못한 결과물인 것 같아서 나를 더 깨우치게 했다. 더 (정치에)관심을 기울여야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어느덧 조인성도 올해 30대 후반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닭띠인데 올해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성이 형하고 서로 ‘아프지 말자’했어요. 그래야 술을 더 오래 마실 수 있으니까요.”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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