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때 한솥밥
潘, 유엔총장된 뒤 엇갈린 길
문재인 측 “배신자” 칼날
“박근혜 정권과 한몸” 직격탄
반기문 측 “정치적 음해” 목청
“패권ㆍ기득권 세력 몰아내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외교보좌관과 외교장관을 거쳐 국제사회 최고 지도자까지 올랐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등의 자리에서 반 총장의 승승장구에 마음 속으로나마 박수를 보냈을 터다. 한때 같은 배를 탔던 두 사람이 두 번의 정부가 지난 지금 대선이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한솥밥을 먹던 처지에서 이제는 진영 내지 가치의 명운을 걸고 한판승부를 벌여야 할 판이다.
일각에서는 얄궂은 운명이라고 하지만 양 쪽 모두 양보할 수 없는 결투다. 반 전 총장의 귀국으로 조기대선 레이스에 불이 붙자마자 양측은 공세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판에 ‘과거 같은 편’은 공허한 맹세가 되고 말았다. 특히 문 전 대표 측이 “유엔 사무총장 인선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들인 공을 잊어버린 배신자”라고 몰아붙이면서 감정의 골까지 패이고 있다. 반 전 총장 측이 “음해성 정치공작”이라고 방어막을 치고 있는 가운데 얄궂은 운명의 대결은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이 갈등의 단초
반 전 총장이 12일 귀국 일성으로 패권과 기득권을 공격하자 13일 문 전 대표가 발끈했다. 문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정권교체를 말하지 않고 정치교체를 말하는 것은 박근혜정권을 연장하겠다는 말로 들린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 전 총장이 문 전 대표까지 포함해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자 반 전 총장을 박근혜정권과 한 몸통이라며 맞받아 친 것이다.
하지만 양측 갈등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란 게 정설이다. 연원은 유엔 사무총장을 선출하던 참여정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정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 총장 만들기 프로젝트’에 그야말로 ‘올인(다 걸기)’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국가적 과제’로 결정한 뒤 한국 대통령이 한번도 방문하지 않던 아프리카까지 방문해 각국 정상들을 설득하는 득표활동을 펼치는 등 선거대책총괄본부장을 자처했다.
참여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이광재 전 지사는 “2005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반기문은 확실한 친미주의자니까 지지해달라’고 농담조를 섞어가며 부탁한 적도 있다”면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2006년 동원호 피랍자 석방교섭이 난항을 겪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야당에서 외교부 장관 경질설이 들끓을 때도 노 전 대통령은 “욕은 내가 먹을 테니 무조건 반기문을 지키라”며 반기문 호위무사로 나섰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불화의 싹
불화의 싹은 공교롭게도 두 대권주자가 함께 모셨던 노 전 대통령 서거에서 움텄다. 마찬가지로 참여정부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고 얼굴을 바꿨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서거 이후 반 전 총장이 3번이나 한국을 찾았지만 2011년 12월에서야 처음 참배를 했고, 당시에도 비공개를 강력하게 요청을 해 권양숙 여사를 비롯해 참모진들도 의아하고 서운하게들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며 “이명박 정권 눈치보기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유엔 총장 후보군으로 내가 추천했지만, 인간적으로 신의도 없고, 의리가 없는 사람이라 더는 평가하고 싶지 않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반 전 총장에게 한 마디로 ‘배신자’ 낙인을 찍고 있다.
실제 반 전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장례식에 불참했고, 추모 영상이나 서면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장의위원회 고문으로 이름을 올린 게 전부였다.
반 측, “유치한 정치공세일 뿐” 반박
하지만 반 전 총장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반 전 총장 측근인 오준 전 유엔대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서거 당시 유엔 대표부에 차려진 빈소를 바로 찾았고, 매년 1월 1일 권 여사에게 전화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도운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엄청 도와줬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니냐”면서도 “(당시 외교부에선) ‘반기문 반기문’ 할 정도로 탁월한 공무원이었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 받았던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반 전 총장 측 관계자는 “도대체 왜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 유치한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정치권에서는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갈리자 반 전 총장이 언젠가는 직접 해명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반 전 총장이 검증을 벼르는 친노 진영 ‘저격수’들의 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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